현재 정치권의 큰 문제는 공감능력과 감수성 떨어지는 것
전국이 인정하는 복지구청장...100가정 보듬기 사업으로 590가정에 34억 지원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이 12월 11일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진행된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통 노하우를 공개했다. <사진=폴리뉴스 이은재기자>
▲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이 12월 11일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진행된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통 노하우를 공개했다. <사진=폴리뉴스 이은재기자>

 

문석진 서대문 구청장은 12월 11일 서대문구 구청장실에서 진행된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구청장은 구민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문석진 구청장은 “구청장이 주민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주민이 반대하면 반대의 뜻을 철저히 분석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설득하고, 그래도 여전히 안 되면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3선인 문 구청장은 주민들이 자신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공감과 소통 능력’을 꼽고, “어떤 이야기든 잘 들어주고, 구에서 하고 있는 얘기를 잘 전달한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자신만의 소통 노하우로는 “상대방의 표현이 거칠어도 끝까지 듣는다” “감정적으로 욱해도 항상 부드럽게 얘기한다”고 했다. 

특히 갈등상황에서 “기술적으로 답변하기 보다는 마음을 같이 해주고, 상대방 마음에 대해서 공감능력을 가져야 된다”며 현재 정치권의 제일 큰 문제로 “주권자의 마음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감수성이 굉장히 떨어져있다. 그래놓고 센말, 막말만 하면 되는 줄 아는데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니다”고 일침했다.

이런 맥락에서 문 구청장은 “주민 우선정책을 선도적으로 펼치고 있다”면서 대표적 사례로 ‘100가정 보듬기 사업’을 들었다. 100가정 보듬기 사업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법적인 조건을 떠나 실제 조사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후원자와 연결, 통합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2011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590가정에 총 34억원을 지원했다.

그는 처음 10가정 정도는 이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 ‘낚시(사람들을 현혹시켜 원하는 행동을 유발시키는 것- 여기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불우한 이웃을 후원하도록 하는 것)’도 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직원들이 다 했다며 복지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1955년 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세무회계사무소 대표를 지냈다. 제4대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재무경제위원장을 맡았으며, SH공사 주택공급 이사, 경실련 예산감시위원, 국가청렴위 보상심의위원,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 경제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서대문구청장에 당선되며 민선 5,6,7기 3선 구청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장을 거쳐 현재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문석진 구청장과의 관련 인터뷰 전문이다.

-2017년에 인터뷰하고 2년만이다. 이제 3선 구청장이 되셨는데 구민들이 청장님을 지지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 주민들이 소통이 잘 된다고 생각하실 것 같다. 우선 어떤 이야기든 잘 들어주고, 구에서 하고 있는 얘기를 잘 전달하고. 이런 소통이 중심이 아니었을까. 또 그런 측면에서 주민이 우선인 정책에 대한 고민들을 먼저 선도적으로 하고 있는 거다. 이를테면 복지에 대한 부분도 포퓰리즘이 아니라 주민들의 최저 요구 권리, 또 구청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의무적 사안들- 이를테면 우리가 이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 진입 문턱에 있는데 이런 국가 위상에 맞는 복지의 최저기본선, 이런 거를 다른 이슈가 먼저 나오기 전에 선도적으로 정책을 제시하고, 그걸 집행해가는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우리 주민들에게 어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소통은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구청장님만의 소통 노하우랄까,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시나.

일단은 잘 들어야 한다. 나하고 반대여도 감정적으로 욱하지 않고 일단 잘 들어야 된다. 특히 민원인의 경우에 제가 경험해보면 왜 이렇게 오해를 할까? 하면서 욱할 수 있다. 상대방의 표현이 거칠면 감정적으로 같이 욱해질 수 있지만, 그걸 의식적으로라도 통제한다. 그러면서 끝까지 들어야 된다. 그리고 항상 부드럽게 얘기한다. 그렇다고 제가 10년 가까이 매번 그렇게 했다는 건 아니다. 중간에 욱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민원인이 가고 나면 후회가 되더라. 아, 내가 그 5분만 참았으면 되는데 이런 생각. 

그리고 저는 구청장이 주민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민이 반대하면 반대의 뜻을 철저히 분석하고, 설득할 수 있는 데까지 설득해보고, 여전히 반대가 심할 때는 저의 입장을 접는다. 대단한 철학이 있다면 모르지만 주로 민생문제, 민원과 관련된 것은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된다. 주민과 제가 대치돼서 이렇게 입장이 대립이 될 땐 제가 지는 게 맞다. 구청장은 구민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제가 이렇게 단체장 인터뷰를 한지가 20년이 된다. 그런데 옛날에는 구청장실 앞에서 농성을 한다든지 이런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안 보이는 것 같다. 

가끔은 오신다. 제일 많았던 건 재개발·재건축과 관련된 민원이다. 첫 번째 시위는 구청장 초선 때 집행부가 와서 왜 빨리 사업승인 안 해주느냐며 데모를 했다. 보통은 시위하러 오는 분들이 반대자, 청산자, 비대위, 이런 사람들인데 거꾸로 집행부가 빨리 승인해주라고 오셨다. 삭발까지 하더라. 그래서 계속 사업승인 내주지 않은 거는 비대위하고 빨리 좀 통합을 해라, 화합해라, 갈등이 없어야 된다, 이런 걸 전제로 계속해서 막바지까지 갔는데 시한이 다가와서 할 수 없이 사업승인을 내줬다. 그게 첫 번째 기록이었다. 

그것이 집합적이든 폭력적이든 시위하러 오는 목적은 구청장한테 뭔가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전에 한 번은 초겨울 아침에 출근하는데 장애인 단체 발달장애아 부모님들이 복도에 드러누워 계셨다. 자기들 뜻이 관철 안 되면 오늘 여기서 밤 샌다는 식으로. 그래서 추운데 그러실 거 뭐 있냐, 나하고 대화하러 오신 거 아니냐, 일단 들어가시자 해서 제가 회의실로 모셨다. 그분들뿐만 아니라 북아현 3재개발 비대위도 오셔가지고 구청장실 앞 복도에 진을 치셨다. 그래서 여러분 나 만나러 오셨으면 이왕이면 좋은 자리에서 편하게 차도 마시면서 하자, 들어가시자고 해서 회의실에 들어갔는데 한 3시간을 붙들고 안 놔주시더라. 3시간이면 할 얘기 다 한다. 억울한 얘기, 화난 얘기, 그거 다 들어주고 있으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제가 얘기할 차례다. 그럼 제 얘기가 스펀지처럼 잘 먹힌다. 오히려 제가 거꾸로 위로한다. 여러분들 얼마나 속상하시냐, 저도 똑같은 마음인데 제도적으로 안 되는 이런 문제들이 있어 안타깝다. 그렇지만 하여튼 저도 같이 노력해보겠다. 이러면 사람들이 감정에 받쳐서 울기도 한다. 

제가 답변을 쭉 하고 이 얘기를 했다. 구청장이 굉장히 바쁜 거 아시죠? 근데 여러분들이 이미 3시간 동안 저를 꼼짝 못하게 하셨는데 제가 이제 업무가 있다. 굉장히 많은 업무들이 있는데 이미 3시간 업무는 깡그리 다 못하게 되었고, 이제 제가 꼭 가야될 행사들이 있는데 가면 안 되겠나. 오늘 할 만큼 얘기를 했으니 또 회의 날짜를 잡자. 그 때 오시라. 다 오셔서 얘기하기 불편하면 대표를 뽑아서 하시면 효율적이지 않겠나. 그렇게 해서 해산이 됐다. 그 분들이 그 정도 했는데 안 놔주겠나? 다 가서 일 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일정 잡고 그런 게 되니까 시위가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 제가 그렇다고 해서 시위대가 와서는 안 된다 이런 입장은 아니다. 그건 자유니까. 

최근에는 연희 1동 재개발 쪽에 현금청산자분들, 비대위가 계속 조합해산을 요구했다. 그래서 조합해산 관련 투표를 했는데 50대 50이었다. 1표라도 왔다 갔다 하면 달라지는 상황이라 제가 계속 보류를 했다. 그리고 비대위 편을 계속 들어줬다. 근데 결국 재판에 가서 졌다. 사법부 판단이 나면 행정부가 더 이상 뭘 못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조합에 관리처분을 내줬다. 그랬더니 계속 저와 함께 했던 분들, 할머니들이 끝까지 반대를 하시는 거다. 여기 오셔가지고 아침마다 거의 행사처럼 2시간 북치고 가시고. 그 분들 매일 행사다. 아니 그러실 거 뭐 있냐. 와서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을 하자. 그래서 조합 측에도 모든 비대위 다 포함해서 새로 분양권 주도록 했다. 한 150명 넘는 비대위 중 100명 이상이 분양을 받고, 똑같이 조합원으로 행동했다. 프리미엄이 올라서 현실적으로 이익이니까. 

-결국은 공감대를 형성하는것. 초선들은 청장님 이야기를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 갈등에는 굉장히 좋은 방식이다. 저는 그런 게 다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 답변하기 보다는 항상 마음을 같이 해주고, 그 분들 마음에 대해서 공감능력을 가져야 된다. 정치인들은 우리 국민들, 지방정부 같으면 우리 주민들, 시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감수성을 가지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정치권의 제일 큰 문제는 주권자의 마음에 대한 공감능력이 굉장히 부족하고, 감수성이 굉장히 떨어져 있는 거다. 그래놓고 센말만 하고, 막말만 하고, 격하게만 하면 되는 줄 아는데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이 홍은초등학교에서 열린 모두 아이 창의체험한마당에서 어린이들과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서대문구청>
▲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이 홍은초등학교에서 열린 모두 아이 창의체험한마당에서 어린이들과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서대문구청>

 

-구청장님은 주민 우선정책을 선도적으로 펼치셨다. 특히 복지 부분 사례를 좀 들어 달라.

가장 중요한 사례가 100가정 보듬기 사례다. 구청에서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법적으로 자격이 안 되시는 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할머니와 손녀딸이 사는데 자기 아들 며느리가 다 행방불명이다. 그러면 주민등록상에는 아들과 며느리가 있기 때문에 부양 의무자가 있다. 그래서 기초수급자가 안 된다. 이 할머니는 손녀딸하고 폐휴지 주워가지고 사는데 한 달에 40만원 번다. 그걸로 둘이 살려면 기초수급자보다 더 힘들다. 이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우리는 실제 조사를 철저히 하고, 법적인 조건 따지지 않고 현재 얼마나 어려운지 상황을 보고 이 분들을 선정해 도와주겠다고 하는 성당이나 교회, 사찰, 개인법인에게 자료를 드린다. 그럼 그 분들이 자기 마음에 닿는 사람을 매월 지원하는 거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서 매월 직접 후원계좌로 처음에는 50만원, 지금은 평균 30만원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하는데 한 번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립할 때까지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경우에 손녀딸이 고등학교에 다니는 3년 동안 개인이 매월 50만원을 지원해줬다. 그렇게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자립할 때까지니까 약속대로 첫 월급 받을 때 후원이 종료됐다. 아이가 중3 때부터 고1, 고2, 고3, 이렇게 한 달에 50만원씩 받았으니까 1년이면 12개월 600만원이고, 3년이면 1,800만원인데, 그것보다 길었으니까 2,000만 원 이상이 지원된 거다.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 할머니가 저만 보면 손을 꼭 잡는다. 하여튼 아이가 아주 공부도 잘하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며 자립했는데, 저는 그것이 단순히 재정적 지원만의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우리 아이들이 불우한 환경에서 잘못되면 훨씬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 빠진다. 그걸 과감하게 사회적인 후원 결연으로 지원해줬을 때 이 아이는 내가 혼자가 아니다, 우리 서대문 지역사회가 항상 나를 챙겨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100가정 보듬기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금전적 지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통합사례관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가정에 무엇이 필요한지, 주거문제, 의료문제, 교육문제, 이런 것을 일일이 다 챙겨준다. 최근에 북아현동에 사시던 한 분이 저한테 편지를 보냈다. 자기가 서대문구에 참 고마움을 느끼고 떠난다, 떠나는 마당에 직원들 칭찬 좀 해주고 싶어 청장님께 편지를 썼다. 무슨 내용인가 봤더니 이 사람이 노름도 하고, 알코올 중독도 되고, 또 결혼도 파탄이 나서, 나중에는 혼자 북아현동 고시원에 살게 된 거다. 우리 복지팀장이 찾아가니까 자존심 때문에 도움 주는 것을 거절했다. 그런데 복지팀장이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주변이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 일단 받고, 당신이 필요한 일을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가져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자존심을 계속 배려하면서 도움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인간적 모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선 급하면 급한 대로 자기 생존문제 먼저 해결을 하셔야 된다, 그 다음에 당신의 자존을 세울 수 있는 일을 해봐라. 그래서 여러 가지 내용들을 챙겨가지고 공공근로도 시켜드렸는데 이 분이 한 달 만에 통풍 때문에 근로를 못하게 되었다. 우리가 일일이 다 조사를 해서 기초수급자를 만들고, 기초수급자가 되니까 매달 생활비가 나오고, 주거문제를 따져보니까 LH에 공공임대주택이 되더라. 그래서 의정부 쪽에 공공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떠나게 됐다. 그동안 여기서 받았던 도움 때문에 자기는 살아났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런 편지 글을 썼다. ‘청장님의 복지정책에 대해서 정말 직원들이 너무 인간적으로,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자존심을 항상 배려해주더라.’ 이제 이러한 것들이 전부 아우러져서 우리의 복지가 단순히 퍼주기가 아니고, 어려운 사람의 현실에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도울 수 있는 영역들을 단순히 재정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례 관리를 통해서 그 사람의 모든 상황에 맞는 맞춤형으로 해주는 거다. 

100가정 보듬기 사례가 우리 복지의 장점이고, 이제 전국 모델이 됐다. 그래서 제가 그랬다. 그동안 구청이 복지중심이었는데 동이 복지중심이 되게 하자. 동의 직원들은 전부 복지업무 해라. 행정업무 중에서 구로 이관할거 다 이관시켜라. 동은 최소한의 재난기능, 아주 급한 것들을 담당하고 나머지는 전부 복지만 해라. 동장은 복지동장, 그리고 행정직 직원도 복지업무를 같이 해라. 예전에 복지직원들이 너무 업무과중이 돼서 4명이나 자살을 했는데, 우리는 이제 동 직원들이 전부 복지업무를 담당하니까 여유가 생기는 거다. 그래서 실제 복지사들은 일일이 현장을 방문하게 된다. 동장한테 주어진 특명이 매일 동네를 다녀라. 그리고 우리 힘만으로 안 되니까 민간 연계를 해야 되는데 연계하는 방식은 복지통장, 통장들이 자기 통을 책임져라. 그래서 가장 어려운 이웃을 찾아내는 일을 통장이 하는 거다. 어려운 이웃을 찾아내면 법적으로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주고, 안 되면 100가정 보듬기 방식으로 지원을 해주는 거다. 어려운 가정을 찾아놨는데 아무 도울 방법이 없다면 허탕이다. 근데 우리는 찾아놓으면 도움의 손길이 항상 있다. 

2011년 1월부터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다. 몇 가정을 했는가. 590가정. 지원된 금액의 누적 액수가 34억 원이다. 거짓말 같지 않나? 우리 사회도 기부사회가 가능하다. 저는 이걸 공감한다. 거기에 중요한 바탕은 뭐냐면 복지시스템의 철저한 투명성. 내가 지원한 돈이 어려운 사람에게 철저하게 100% 지원되어야 한다. 그렇게 설계를 했다. 구에는 돈이 한 푼도 오지 않는다. 직접 다이렉트 구좌로 가게 되어 있다. 공동모금회를 거칠 뿐이다. 우리는 사례 관리만 해준다. 돈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또 이 사람이 돈을 받고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는지, 또 후원해주는 사람이 사정이 있어 끊기게 되면 그 다음 후원자를 찾아주는 일 이런 걸 한다. 그래서 지원받는 사람들도 지역사회 공동체를 느끼게 되는 거고, 후원자들도 큰 보람을 느낀다. 그렇지 않고서는 590가정까지 후원자들이 나오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에는 아시는 분들이 100가정 보듬기 하지 말고 1000가정 보듬기를 하자! 그렇게 표현을 하는데 제가 100가정 보듬기라고 해서 100가정만 하자는 뜻은 아니었다. 100이라는 어떤 완전수. 실제로 2011년 1년 만에 100가정을 해버렸다. 근데 그 다음부터는 벅차더라. 100가정이면 한 달에 10가정 정도를 해야 되고, 후원자를 찾아야 한다. 제가 교회에 가서 저한테 광고시간을 달라고 하고, 얘기를 쭉 한다. 이러한 가정이 있다고 사례를 설명하는 거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눈물도 글썽글썽 보인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아, 낚였구나’ 그러고 간다. 그럼 며칠 뒤에 연락이 온다. 후원을 하겠다. 이렇게 처음에 한 10가정 정도 까지는 제가 나서서 했다. 근데 그 다음부터는 590가정까지 제가 한 게 하나도 없다. 우리 직원이 다 했다. 대단하지 않나? 

시스템 설계만 제대로 되면, 또 우리 직원들이 여기에 함께 하는 마음이 되면 그런 감동들이 있다. 우리 사회복지사들이 저한테 그랬다. 자기가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컴퓨터 작업만 하면 보람 못 느낀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 찾아가고, 그 사람 얘기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실제로 도움을 줬더니 기뻐하고, 그럼 자기가 사회복지를 선택하고, 공부하고, 업무를 보는 것에 대해서 보람을 느끼는 거다. 내가 이 사람 생명을 구했구나. 그래서 제가 항상 얘기하는 것이 쉰들러리스트에 나오는 쉰들러에게 나중에 살아남은 1,100명의 유태인들이 자기들 금니 뽑아서 반지를 하나 만들어준다. 이게 실화다. 근데 그 반지에 새긴 탈무드의 이야기가 뭐냐면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천하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지정책을 한다고 해서 서대문구 전체 주민의 어려운 사항을 다 돕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에 서대문 안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이 누군지, 그 사람 한 사람이라도 우선 돕자. 그렇게 590가정을 도왔다. 

-우리가 흔히 복지의 사각지대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복지사들이 과로로 여러 가지 불행한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시스템으로 해결하셨다.

그래서 저는 사회복지사들에 대한 처우를 우선 개선해주고, 복지직을 사무관으로 승진 시켜서 복지직 사무관이 2명 생겼다. 그리고 격려를 위해서 워크샵도 진행해주고, 해외연수도 보내주고, 현장에 뛰는 것을 가장 기쁘게 제가 격려해주고, 그런 측면들을 우리가 선도적으로 먼저 했는데 나중에 박원순 시장이 보궐로 되시고 그런 정책들을 시에서도 지원한다. 또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에 가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이어서 박근혜 정부에서 제 정책을 받아서 전체 시군구에 박근혜 정부 이름으로 했다. 그 기본이 우리 서대문구 모델이다. 그리고나서 동사무소 명칭이 동행정복지센터로 바뀌었다. 서울은 박원순 시장이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라고 명해서 그렇게 하고 있지만, 서울을 제외한 모든 시군구의 동은 ‘동행정복지센터’로 복지가 이름에 딱 들어간다. 이렇게 된 것도 서대문 모델이었다. 그래서 기초자치단체, 모든 시군구에서 ‘복지구청장’ 그러면 서대문 구청장으로 다 인정을 한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12월 11일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폴리뉴스 이은재기자>
▲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12월 11일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폴리뉴스 이은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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