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김종인 위원장 취임 열흘, ‘김종인 효과’는 있었나

2020.06.08 11:41:34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취임한지 이제 열흘이 되어가고 있다. 그의 출발은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을까.

김 위원장은 이전까지의 미래통합당에서는 낯설거나 상상하기 어려웠던 화두들을 잇따라 던지고 있다. “나는 보수라는 말 자체는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념이 아닌 실용적 정당이라는 방향을 제시하는가 하면, “정당에 있는 사람 누구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가는 정당이 되어야 함을 말했다. “정치의 근본적 목표는 물질적 자유의 극대화”라며 “배고픈 사람이 빵을 사먹을 수 있는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거론했다. 그동안 보수정당이 눈길을 주지 않았던 약자들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제까지 진보가 주장하고 보수가 반대해왔던 얘기들이 김 위원장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나오는 모습이다.

특히 주목도를 높였던 것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를 던진 일이었다.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라며 이제 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제기했다. 재원조달 문제가 아직 요원하다며 속도조절을 하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진보 쪽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기본소득 의제를 던진 것만으로도 파장은 컸다. 그동안 기본소득을 앞장 서서 주장해왔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을 치고 나왔고 어느새 기본소득은 미래통합당의 어젠다로 변해가고 있다"며 민주당의 분발을 촉구하는 얘기까지 할 지경이 되었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기본소득의 내용이 무엇일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그런 문제의식을 일단 던져놓음으로써 여권이 다음 대선에서 기본소득을 추진할 때 수세에 몰리지 않고 내용적 경쟁을 할 수 있는 장치는 마련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대여관계에서도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그는 "반대를 위한 반대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국가의 발전을 위한 일, 국민의 안녕을 위한 일이라면 적극 여당과 협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의례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황교안-나경원 체제에서의 ‘묻지마 반대’ 노선으로 총선에서 심판 당한 직후에 나온 얘기인지라, 살아날 길을 찾으려는 무거운 얘기로 들려온다. 실제로 원구성 협상 갈등으로 21대 국회 개원이 파행을 겪기는 했지만, 황교안 대표 시절에 비하면 통합당의 대처 수위는 한 단계 낮춰진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은 여야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당이 강행한 개원 본회의에 일단 참석하는가 하면, 표결을 거부하며 퇴장했지만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이라든가 협상 중단 같은 강경한 무기들은 꺼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이런 변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당내 반발은 예고된 것이었다. 장제원 의원의 경우 "먹을 것 없는 화려한 잔치"라고 김 위원장에 대해 연일 비판을 하고 있다. 지금은 지켜보고 있지만, 앞으로 당 지지율의 상승이 없을 경우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강경 보수 중진들의 반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열흘도 안되는 짧은 기간을 놓고 김 위원장의 행보를 평가하기는 성급하지만, 그래도 총선 이후 관심 밖으로 내몰렸던 통합당에 대한 관심을 다시 살려놓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 위원장과 비대위 발언들이 연일 뉴스거리가 되면서 어떤 의미이든 통합당의 변화 여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높여놓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말의 잔치가 당 차원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때, 하나마나한 공허한 얘기였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쏟아내고 있는 말들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당의 노선이 될 때 비로소 통합당의 변화는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아직은 말에 그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이 얘기하는 방향들은 통합당 뿐 아니라 우리 정치의 앞길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것들로 판단된다. 보수-진보 간의 진영대결로 점철되어온 우리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이런 변화들이 필요하다. 특히 시대가 변화하는 줄도 모르고 극단적인 보수 노선만을 고집해왔던 통합당의 변화가 선결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김종인 구상들이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될 수 있는지 관심있게 지켜보게 된다.

물론 80 나이의 정치인이 여야를 넘나들며 당을 대표하는 광경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를 대표하는 정당 안에는 변화를 이끌만한, 김종인 만큼의 방향 감각을 가진 인물을 찾아볼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고양이가 검든 희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통합당의 현실이다. 김종인호가 보수정당을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요구에 맞는 정당으로 탈바꿈 시키는지 지켜본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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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칼럼니스트 정치평론가 yuc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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