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또’ 박원순, 민변 출신 잠룡의 꿈 안타깝게 마감

2020.07.10 01:58:48

10일 오전 0시경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시신
딸 9일 오후 실종 신고 이후 수색 7시간만에 발견
민변과 시민운동의 주역에서 잠룡 변신 생애

[폴리뉴스 강필수 기자] ‘인권 변호사, 시민운동가, 최장수 서울시장.'

마치 드라마와 같은 삶을 개척해온 박원순 서울시장이 결국 안타깝게 생애를 마무리했다. 다음 대권주자로서 ‘잠룡’으로 불리며 아이디어가 넘치는 창의적 시정으로 ‘박원순이 또 해냈구나’라는 뜻의 별명 ‘원또’로 상징되는 박원순의 비극은 대한민국의 정치는 물론 사회 전반에도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실종신고에서 시신 발견까지

서울지방경찰청이 10일 오전 2시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에서 진행한 브리핑에 따르면 박 시장 딸의 실종 신고는 9일 오후 5시 16분께 접수됐다.

112에 접수된 신고 내용은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요지였다. 박 시장은 전날 오전 10시 44분께 검은 모자와 어두운 색 점퍼, 검은 바지, 회색 신발을 착용하고 검은 배낭을 멘 채 종로구 가회동의 시장공관을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택시를 타고 성북구 와룡공원에 도착했으며, 오전 10시53분 폐쇄회로(CC)TV에 마지막으로 포착됐다. 경찰은 이 직후 박 시장의 마지막 모습이 포착된 북악산 일대를 수색하던 도중 7시간만인 0시 1분께 숙정문 인근 성곽 옆 산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 

관련 당국은 경찰 635명, 소방 138명 등 총 773명 명의 인원을 동원해 이 일대를 수색했으며 야간 열 감지기가 장착된 드론 6대, 수색견 9마리, 서치라이트 등도 동원했다.

경찰은 현장감식을 거쳐 박 시장을 오전 3시 30분께 영안실에 안치했다. 지인들과 지지자들은 오전 3시께부터 응급의료센터 문 앞에서 기다리다 차량이 도착하자 "일어나라 박원순" "사랑한다 박원순" "미안하다 박원순" 등을 외치며 오열하기도 했다.

앞서 서울시는 9일 박 시장의 일정에 대해 “부득이한 사정”으로 당일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고 오전 10시 40분께 공지했다.  박 시장은 오후 4시 40분 시장실에서 김사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과 만나 서울과 지역 간 상생을 주제로 지역균형발전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며 일정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짜뉴스’ 소동이 현실로

이날 오후 5시 30분을 전후해 서울시청과 서울경찰청 출입기자들은 박원순 시장의 연락두절 소식이 알려지면서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6시께 이미 박 시장의 딸이 실종신고를 했다는 소식이 SNS를 타고 전파되기 시작해 주요 언론사의 ‘박원순 서울시장 연락두절, 딸이 경찰 실종신고’ 등의 속보가 이어졌다.

이후 기자들의 SNS에는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 압박에 의한 장고에 따른 헤프닝 가능성’ ‘오거돈이나 안희정 급 여비서 성추행 고소 접수’ 등 근거를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이 오고 갔다. 이후에도 ‘시신 성대 후문 와룡공원 근처서 발견’ ‘시신 발견서 경찰 공식 부인’ ‘미투 신고는 사실, 시신 발견은 오보’ 등 가짜뉴스와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소식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어진 ‘전 비서 2017년 이후 지속적 성추행, 변호사와 함께 서울시경 고소인 조사’ ‘서울대병원 빈소 예정’ 등의 메시지는 10일 자정 무렵 박 시장의 시신 발견 사실이 확인되면서 현실이 됐다.

민변과 시민운동의 주역, 박원순의 삶

박원순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군에서 2남 5녀의 여섯째로 태어나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1학년 때 유신 반대 시위에 참가해 투옥된 뒤 제적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82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법조계에 발을 디뎠지만 얼마 뒤 인권변호사가 됐다.

1988년 5월 28일 정의실천법조인회와 청년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51명이 통합해 결성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박 시장은 한승헌, 홍성우 등 1세대 인권 변호사에 이어 조영래, 이상수 등과 함께 2세대 인권 변호사의 맥을 이었다.

그는 부천경찰서 성고문,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등 5공화국 아래 주요 시국사건에 대한 변론을 통해 시대의 아픔에 함께 했다.

이후 경실련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내 시민운동의 시대를 개척한 그는 1994년 참여연대의 설립 주역이 됐다. ‘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는 생활 속에 파고 드는 박원순의 시민운동적 심성과 소신이 탄생시킨 결과였다.

주위의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뛰어든 현실정치에서 그는 2011년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로 주어진 재보궐 선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지지로 야권 단일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제35·36·37대 서울시장직을 연임하면서 유력한 대권후보로 탈바꿈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는 기동민, 김원이 등  '박원순계'로 불리는 10여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박 시장은 지난 6월 16일 폴리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나’면서 ‘제로페이, 마을 공동체, 도시재생 등 지난 10년간 협치와 혁신을 양 날개로 오롯이 쌓인 사람투자의 결과물이 오늘의 서울’이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박원순도 넘지 못한 ‘미투’

박 시장은 시장실에서 근무했던 전직 비서로 부터 '과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있다'며 고소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지난 8일 경찰에 출석해 고소장을 제출하고 고소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내용은 박 시장의 여러 차례 신체접촉과 메신저로 부적절한 내용을 전송받았다는 주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박 시장의 사망으로 경찰의 관련 수사는 종결된다.

또 앞으로 9개월 간 서울시 행정은 서정협 행정1부시장의 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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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필수 pskang@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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