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현실적 한계 분명, 김종인 개헌 발언은 통합당 차기주자 부재와 맞물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8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서 인사하고 있다.[사진=국회사진기자단]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8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서 인사하고 있다.[사진=국회사진기자단]

[폴리뉴스 정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간 단독회동 추진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재확산으로 중단됐다. 발등에 떨어진 코로나 방역이 청와대의 발목을 잡았고 김 위원장과 통합당도 ‘2차 코로나 정국대응’에 골몰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8월18일 김종인 위원장이 한 언론을 통해 구체적 의제를 설정해 문 대통령과 단독 회동을 할 수 있다고 제안한데 대해 “문 대통령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힌 건 매우 다행”이라며 “형식과 내용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협의에 바로 착수했으면 한다”고 반기면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단독회동은 급물살을 탈 듯했다.

그러나 이후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최 수석이 이틀 뒤인 20일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를 만나 회동에 협력을 구했지만 주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협치나 상생의 의지가 없음에도 표시만 하는 게 아니냐는 외부 평가가 있다”는 다소 냉랭한 답을 내놓았다. 이후 청와대와 통합당은 ‘코로나 정국’ 속에 빨려 들어갔다.

‘코로나 정국’으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회동은 8.29일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8.29 전대 후 단독회동 추진은 더 많은 변수가 투입된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함수관계를 풀어내야 한다. 단독회동 자체가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 

먼저 ‘코로나 정국’이 강력한 변수로 등장했다. 최 수석이 김 위원장에게 제의한 여야 대표회담 제의는 8.15 광화문집회 전이다. 여권이 부동산문제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을 때다. 8.15집회 이후 ‘코로나 정국’은 다른 정치환경이다. 회동이 이뤄질 경우 ‘코로나 방역’이 중심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김종인 위원장이나 통합당이 바라는 그림이 아니다.

또 8.29 전대로 새로 출범하는 새로운 민주당 지도부 변수다. 물러나는 이해찬 대표체제 끝물에 여야 영수회담에 준하는 단독회동 추진에 민주당 변수는 크게 고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전대 이후라면 다르다. 특히 강력한 대선주자인 이낙연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될 가능성 높다. 청와대가 김 위원장과의 단독회동을 추진할 경우 민주당의 양해는 필수다.

민주당 내부 권력지형 변화는 새로운 당청관계의 출발점이다. 8.29전대가 민주당 차기 권력 재창출에 시동을 거는 기점이기 때문이다. 개헌 등 미래권력을 규정하는 의제 관리의 중심축은 이 순간부터 청와대가 아닌 당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단독으로 만날 경우 민주당은 불편할 수밖에 없고 회동 결과물에 대해서도 시큰둥할 것이다.

통합당 내부의 권력관계에서 차지하는 김 위원장의 역할도 변수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는 통합당이 4.15총선 패배 후 어쩔 수없이 선택한 것이다. 김 위원장에게는 야권의 대표성도 없다. 8월19일 광주 5.18민주묘지를 방문한 김 위원장이 무릎 꿇고 사죄했지만 당의 공식적인 사죄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최근 시사저널이 실시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야권 정치인 영향력 부문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39.7%로 주호영 원내대표(40.1%)에 밀렸다. 선출되지 않은 관리형 대표인 김 위원장의 위상을 드러낸 대목이다. 이러한 정치적 한계 때문에 김 위원장이 단독회동으로 정치적 타협물을 만들어내더라도 진영 내부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회동은 ‘여야 영수회담’이 분명하지만 언론들은 ‘영수회담’이라고 이름 붙이기를 주저하고 ‘단독회동’으로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야권 내 형식적 서열구조로는 넘버1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인정하기 어려운 속내가 담겼다.

‘협치’의 현실적 한계 분명...김종인 개헌 발언, 당내 차기주자 부재와 맞물려    

그럼에도 청와대는 ‘협치’라는 정치적 명분을 얻어야 하는 국정주체이기 때문에 야당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통합당이나 김 위원장을 바라보면서 단독회동에 임하기보다는 이를 주시하는 ‘국민’의 눈이 더 무섭다.

대통령과 야당의 만남은 국민의 요구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21대 국회 협치 주체는 민주당과 통합당이다. 민주당이 176석의 다수당으로 국회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통합당은 민주당과 국회운영에서 협치를 실현하는 것이 1차적이다. 20대 국회처럼 여소야대라면 대통령의 역할이 크지만 여대야소 국회에서는 여야가 먼저 머리를 맞대는 것이 순서다.

대통령이 나서는 ‘협치’는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한 정치행위다. ‘소수파 존중’이라는 민주주의 정신의 구현에 맥이 닿아 있다. 그렇다고 ‘협치’가 ‘다수결 원리’라는 민주주의 의사결정원리까지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입법과 정책을 책임지는 것은 다수당이다. 즉 ‘협치’의 현실적 한계 또한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동에서 ‘개헌’ 의제가 다뤄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 박병석 국회의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 여권 내 중진들의 개헌 필요성 발언에 김종인 위원장이 ‘내각제 개헌’이라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월 14일 관훈클럽 초청토론에서 “권력구조를 개편하겠다는 제의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며 내각제 개헌에 나설 뜻을 나타냈다. 또 박 국회의장이 제헌절인 7월 17일 “내년이 개헌 적기”라며 개헌을 공식 제안하자 “개헌을 하려면 내각제로 개헌하는 것이 좋다”고 맞받았다. 

문 대통령이 2018년 3월 개헌 발의안을 제출했지만 당시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표결 참여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발의한 정부 개헌안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기본권 개념을 확장하고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담았다. 

이후 문 대통령은 개헌은 ‘국회의 몫’으로 못 박았고 최근의 21대 국회 개원연설 때도 개헌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개헌은 임기 후반기를 맞은 대통령이 나설 명분과 동력은 약하다. 국회가 이미 개헌의 주체이며 국회 다수당으로 발의권을 쥔 민주당과 개헌 거부권을 가진 통합당이 풀어야할 정치적 숙제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개헌’에 있어서만큼은 민주당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만나더라도 ‘개헌’에 대해 나눌 얘기는 많지 않다. 통합당으로선 개헌 논의를 하려면 새로 선출되는 민주당 대표, 차기 유력 대선주자와 논의해야 한다.

개헌은 차기 권력의 형태를 규정하므로 차기 대권주자의 뜻이 중요하다. 임기가 2년도 남지 않은 현재권력이 미래권력을 규정하는데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당이나 김 위원장도 민주당을 건너뛰고 문 대통령과 개헌을 논의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김종인 위원장이 개헌에 운을 떼는 것은 여권 내부 개헌논의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뜻보다는 통합당 내부에 유력 차기 대선주자가 없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는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깔린 것이다.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야권주자 중 1위를 한다거나 윤 총장이 빠질 경우 다른 야권주자 지지율이 5% 미만에 그치는 상황의 반영이다. 통합당의 ‘차기 대선주자’ 부재가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내각제 개헌’ 발언을 이끌게 한 배경으로 분석된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