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능구의 정국진단]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② “한국 정치의 근본적 변화는 시민이 조연에서 주연이 되었다는 것”

2020.12.12 14:38:30

“18년 전과 정치 환경 변화 상당해…그야말로 문명적 차이”
“국회의원 활동이라던가, 노력, 성실성 평균 이상…진영정치가 개별적 노력과 성과 가리고 있어”

[폴리뉴스 대담 김능구 대표, 박응서 정치경제부장, 정리 남가희 기자]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은 18년 동안 달라진 한국 정치의 근본적 변화를 “시민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바뀐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은 지난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실에서 <폴리뉴스> 창간 20주년 국회 상임위원장과의 만남 특집으로 본지 김능구 대표와 ‘정국진단’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민석 의원은 1996년 15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이후 18년 만에 다시 국회의원이 되었다. 김 의원은 18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정치에 대해 “큰 틀에서 보면 정치 환경이 변한 것 같다”며 특히 “정책 결정 과정, 공천 과정 이런 모든 면에서 시민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확실하게 바뀌었다는 것이 한국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그때 당시에만 해도 당비를 내고 발언권을 갖는 권리 당원이라는 것은 가상의 존재였지, 실체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상당한 실체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우 정치가 아닌 철인 정치, 시민 현인 정치 수준으로 가는 것은 아직 과제가 남아있다”면서도 “적어도 집단적 지혜 수준과 정치적 결정권이라는 점에서는 2000년대 초기와는 상전벽해가 이루어졌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야말로 문명적 차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석 위원장은 확연하게 달라진 국회의 모습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초선, 재선 때에는 6년 내내 이른바 1등 국회의원으로 평가받은 적이 있다”라며 “제도로서 인턴이 존재하지 않을 때 자비를 털어 인턴을 활용했고, 정책보고서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때 매달 정책보고서를 냈다. 국감보고서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때 국감 보고서라는 것을 낸 최초의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지금은 이런 게 일상화됐을 뿐 아니라 국회가 아니라 거의 국회 대학 수준이 되었다”며 “이것이 (국회) 환경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며 김 의원은 “(이러한 이유로) 제가 다시 이곳에 들어올 때 하나는 ‘나는 초선이다’라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고, 또 하나는 국회의원으로서 의정 평가에서 높게 받겠다는 생각을 사실상 접고 시작했다.”며 “30대, 40대의 펄펄 나는 전문성도 있고 에너지가 충만한 의원들하고 의정활동만 가지고 승부를 벌인다는 것은 ‘과욕이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환경이 변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민들이 국회의 이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의 활동이라던가, 노력, 성실성은 평균 이상이지만 진영정치가 개별 노력과 성과를 잘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지난 18년간의 근황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김 의원은 “18년 동안 정치권에서도 2010년 최고위원을 한 적이 있고, 지방선거 총괄위원장도 했었고, 민주 연구원장도 2년 정도 했었다.”며 그간의 정치 활동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강의했던 적도 있고, 교수로 수업을 몇 개씩 맡아서 리더십 과정 주임 교수를 했던 적도 있고, 중국에 가서 공부도 하고, 변호사 자격도 따고, NGO 활동도 몇 년 했었다.”며 다양한 경험들도 소개했다.

한편, 서울에서 태어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 출신이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신임을 얻은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2002년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다. 이후 칭화대학 법학원 중국법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러트거스뉴저지주립대 로스쿨 J.D. 과정을 마쳤다. 2010년에는 최고위원을 역임했으며, 지방선거 총괄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2016년에는 민주당 대표로 활동, 2017년부터 2년 동안은 민주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했다. 그리고 2020년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18년 만에 국회에 입성했다. 그리고 지난 9월 제21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Q. 위원장님 시간이 좀 흘렀지만 축하드립니다. 96년 15대 처음 당선되고, 재선하고 나서 오랜만에 국회로 돌아왔다. 보통 8년 만에 돌아온 사람은 많이 봤는데 국회에 18년 만에 돌아온 사람은 본 적이 없다.

18년 만에 돌아와서 국회의원을 다시 할 수 있는 거는 제가 워낙 일찍 했다가 일찍 그만뒀으니까 가능하지, 나이 40에 들어왔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엊그제 보니까 이광재 의원이 10년 만에 들어왔고 한병도 의원이 12년 만에 돌아왔더라. 나는 몰랐는데 조광조가 10년 유배됐다가 왔다고 하더라. 그걸 듣고 저도 생각을 해봤더니 다산 정약용이 18년 유배더라. 지난 선거 때 누가 다산 선생이 18년 유배됐었다고 기운 내라고 글씨를 하나 써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 일찍 시작해서 일찍 꺾였다가 다시 왔으니까 힘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Q. 그런데 정치는 계속해왔잖아요. 민주당에서 선거기획단장도 맡으시고.

18년 동안 정치에 복귀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강의했던 적도 있고, 교수로 수업을 몇 개씩 맡아서 리더십 과정 주임 교수를 했던 적도 있다. 공부했던 적도 있다. 중국 가서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도 따고, NGO 활동도 몇 년 했다. 아이들 교육 관련 NGO도 했었다. 정치권에서도 2010년 최고위원을 한 적이 있고, 지방선거 총괄위원장도 했었고, 민주 연구원장도 2년 정도 했었다. 그사이에 띄엄띄엄 정치를 했던 것 같다.

Q. 21대 국회가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큰 틀에서 보면 정치 환경이 변한 것 같다. 제가 92년 첫 출마에서 떨어지고 96년도에 당선되고 2002년에는 서울시장 떨어졌었는데. 2002년 막판 정치 경험에 핵심적 장면 중의 하나가 2002년 대선 룰, 그러니까 지금 한국 정치의 기본 룰인 5:5 국민경선 디자인을 제가 하고,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서보고, 대선 단일화 작업도 했다. 그게 (저의) 2002년 핵심적인 세 장면인데. 그때와 18년이 지난 한국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는 시민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확실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책 결정 과정, 공천 과정 이런 모든 면에서 시민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바뀐 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때만 해도 당비를 내고 발언권을 갖는 권리 당원이라는 것은 가상의 존재였지, 실체가 아니었다. 지금은 완전한 실체가 되었다. 아니 완전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실체가 되었다. 제가 완전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완전이라고 하는 것은 당원들의 의식과 학습 수준이 상당한 수준에 달하는 철인 정치. 그러니까 중우정치가 아닌 시민 현인 정치 수준으로 가는 것은 아직 과제가 남아있으나, 적어도 집단적 지혜 수준이라는 것과 정치적 결정권이라는 점에서는 2000년대 초기와는 상전벽해가 됐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게 정치 환경의 차이고, 그야말로 문명적 차이라고 본다.

 국회의 차이는 이런 거다. 제가 초선, 재선했을 때에는 6년 내내 이른바 1등 국회의원을 했었다. 국회의원이 270 여명 정도였을 때였는데. 거의 6년 내내. 국회의원 상호 평가 1등, 상임위 평가 1등을 했었다. 당시에 의정활동을 잘하는 것으로 평가받은 최초의 모델이 이해찬 의원이었다. 이해찬 의원이 재야 출신 정치인들이 의원으로 올라올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운동권 출신들도 잘하네’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운동권 출신이 (국회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에 소위 86그룹들이 국회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저는 그때 제도로서 인턴이 존재하지 않을 때 자비를 털어 인턴을 활용했고, 정책보고서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매달 정책보고서를 냈다. 국감보고서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때 국감 보고서라는 것을 낸 최초의 사람이었다. 근데 지금은 그런 게 일상화됐을 뿐 아니라 국회가 아니라 거의 국회 대학 수준이 되어버렸다. 아침부터 최고 수준의 클래스들이 국회에서 열리지 않냐. 상당수 초선의원이 중심이 돼서. 중진 의원들도 이제 안 하면 안 되는 정도가 되었다는 게 환경의 변화다.

제가 다시 이곳에 들어올 때 하나는 ‘나는 초선이다’라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고, 또 하나는 국회의원으로서 의정 평가에서 높게 받겠다는 생각을 사실상 접고 시작했다. 그니까 뭐, 지금 30대, 40대의 펄펄 나는 전문성도 있고 에너지가 충만한 의원들하고 의정활동만 가지고 승부를 벌인다는 거는 ‘그건 과욕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환경이 변했다는 거다.

Q. 국민들은 국회의 이런 변화에 대해서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국회는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 국민들도 있다.

국회의원 활동이라던가, 노력, 성실성 평균 이상이다. 진영정치가 개별 노력과 성과를 잘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는 그 현상 때문에 그렇다. 세상은 항상 변하고 있다. 안 변하고 있는 것 같아도 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의정활동에 집중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의원의 비율은 20년 전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여야 진영정치가 그런 개별의 노력을 가리고 있는 상황이 지속하고, 심화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남가희 ghgyuw@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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