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의 적폐를 심판하겠다는 유체이탈의 화법

문재인 대통령<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적폐청산’의 기치를 들고 나왔다. 그는 15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토지 투기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단호한 의지와 결기로 부동산 적폐청산과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남은 임기 동안 핵심적인 국정과제로 삼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부동산 적폐청산을 "우리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라고까지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에도 “이번 일을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 공정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만들자"며 부동산 적폐 청산론을 제기한 바 있다. 과연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고 있는 것일까.

LH 사태의 파문으로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적폐 청산을 들고 나온 것은, 지금의 위기 상황을 공세적으로 정면돌파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권의 명운이 걸리다시피한 상황에서 부동산 적폐청산론으로 국면을 전환시키려는 의도도 읽혀진다. 하지만 집권 말기에 느닷없이 터져나온 부동산 적폐청산론은 무척 생뚱맞게 들린다.

우선 LH 사태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심판자를 자처하는 모습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LH사태와 연이어 드러나고 있는 여권 정치인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하여 집권세력은 책임을 통감하며 고개 숙이는 모습을 진작에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부동산 적폐청산론을 들고 나온 문 대통령의 모습에서는 여전히 자신들을 도덕적으로 우월한 심판자로 생각하는 오만함을 엿보게 된다. 사과는 하지 않고 남의  얘기하듯이 적폐청산을 외치는데 대한 여론의 비판이 비등하자 문 대통령은 오늘(16일)에야 뒤늦게 사과를 했다. 적폐청산의 구호는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에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지, 이제 임기말을 맞고 있는 정부가 내걸 기치는 아니다. 도대체 이제까지 무엇하다가 새삼스럽게 부동산 적폐청산을 들고 나오느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결국은 국민의 시선을 자신들의 책임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국면전환용이라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또한 작금의 부동산 문제를 적폐청산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대통령의 생각은 무척 걱정스럽다. 부동산 가격의 급등을 낳은 정책 실패의 본질은 무엇이었던가. 시장에서의 수요-공급 원리를 무시하고 공급은 충분하다며 규제 일변도의 정책만 펴다가, 시장의 반란에 놀라 뒤늦게야 공급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모습이다. 그런 정책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부동산 정책들에 대한 재검토를 해야 할 일이지, 엉뚱하게도 부동산 적폐가 주범인양 몰아가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정치적 선동이다.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기치를 내걸고 적폐들을 일망타진하면 부동산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이해는 하고 있는 것일까. 문 대통령의 부동산 적폐청산 기치가 가져다주는 불안감은,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에 대해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불길함 때문이다.

대체 부동산 적폐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호하다. 이번 LH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업무상의 비밀 정보를 이용하여 투기를 하는 불법 행위들이 드러났다. 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런 부동산과 관련된 불법 부패비리들은 대체로 집권세력 쪽에 많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금 집권세력이 국회,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공기업 등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정보들에 가까이 있는 쪽이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자기들의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마치 자신들과는 무관한 남들의 적폐를 청산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유체이탈 화법이다. 더구나 검찰의 손발을 묶어놓아 눈 앞에 벌어진 부동산 부패비리 조차도 제대로 수사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것도 문재인 정부의 집권세력이 아니던가. 그러니 부동산 적폐라는 것이 있다한들, 자신들이 심판해야 할 다른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들의 문제인 것이다. 굳이 멀리 갈 것 없이 스스로를 조사하고 심판하면 되는 일이다.  아무리 민심이 들끓어 위기 상황을 맞았어도 국가를 이끄는 대통령은 합리적인 생각과 정책을 말할 책임이 있다. 갑자기 부동산 적폐청산을 외치는 대통령의 정치적 구호로 부동산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은 상식에 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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