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부족해 기술력으로 버티는 한국, 규제 풀고 미중 양쪽 머금고 가는 것이 최선"

미중 기술패권 갈등 속에서 비롯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양국으로부터 투자 결정을 압박받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 미중 기술패권 갈등 속에서 비롯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양국으로부터 투자 결정을 압박받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유경 기자] 미중 기술패권 갈등 속에서 비롯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이 자연재해와 수요 예측 실패 등으로 더 심화되는 가운데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양국으로부터 반도체 관련 투자 결정을 압박받고 있다.

세계 각국은 반도체 생산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제 분업 형태를 지속해왔다. 글로벌 공급망 체제에 소속돼 동맹을 형성함으로써 안정적으로 부품을 조달받고 고객을 유지했다. 한 국가나 기업이 동맹에서 배제되면 국가 차원을 넘어 큰 동맹 체제에 홀로 대항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개별 기업이 반도체 생산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국제 역학구도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 심화

미국 정부는 반도체를 ‘전략자산’으로 규정하며 공급망 재편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6월 ‘반도체 생산 촉진법’을 발표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첨단기술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2024년까지 반도체 제조설비 투자비용에 대해 40%까지 환급 가능한 투자세액공제 프로그램이다. 지난 3월 미국 종합반도체기업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에 공장 2개를 설립하도록 200억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역시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은 280조원을 투자해 2019년 말 기준 50개 이상 반도체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다. 글로벌 5위 파운드리 업체 중국 SMIC는 미국의 무역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반도체 초미세가공 기술, 장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화웨이는 2019년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반도체 수출 금지 등의 제재를 받은 이후 매출이 쭉 감소하고 있다.

이 같은 미중간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지난 2월 미국 텍사스 NXP, 인피니온, 삼성전자 공장 등 이상한파로 공장 가동이 멈췄다. 지난달에는 일본 르네사스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게다가 지난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생산업체들은 자동차 판매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해 차량용 반도체 부품 주문을 줄였는데, 경기회복이 빠르게 나타나자 공급이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미중 반도체 투자 압박에...한국 ‘고심’

미국은 자국 내 차량용 반도체 생산기지 확보를 위해 기업 투자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CEO 화상회의를 주재했다. 이후 인텔은 차량용 반도체 제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앞으로 6~9개월 안에 생산한다는 목표로 차량용 반도체 설계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은 주로 PC와 CPU, 서버용 반도체를 제조했지만 생산라인 일부를 전환해서라도 바이던 정부 요청에 부응하려는 움직임이다. 

삼성전자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심 중이다. 삼성전자는 7나노, 5나노 등 최신공정으로 스마트폰이나 고성능PC에 사용되는데 최근 공급이 부족한 MCU(마이크로 컨트롤 유닛) 등 30나노 수준의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자동차는 공간이 넓어 미세공정을 쓸 필요가 없다. 차량용 반도체 공정은 수익성이 떨어지는데 삼성전자가 미국 요청에 화답하느라 과도한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기존 생산라인을 전환하는 데 비용이 들며 향후 반도체 부족 사태가 정상화될 경우 기존 라인으로 돌리는 데 역시 손실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우리 정부에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3일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은 우리 정부에 반도체와 5G 이동통신 등에 대한 협력을 요구했다. 삼성전자가 미국의 투자 요구를 받아들이면 중국도 삼성전자에 추가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리라가 미국에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할 경우 중국 정부가 미국과의 거래를 문제삼거나 ‘사드 보복조치’와 유사한 일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 9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 업계 관계자와 대책 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생산라인을 중단하거나 감산하는 조치를 내리고 미국이 삼성전자를 반도체회의에 초청한 소식이 전해지고 한참 후의 소집이었다. 코로나19 여파와 미래 성장산업의 핵심 자원인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때, 정부의 대응이 늦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하고 시장규모의 경우 미국​‧중국에 비해 1/27밖에 안 되며 독보적인 기술력 그것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 한 쪽으로 치우쳐 다른 쪽을 배제한다기보다 양쪽 다 머금고 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정치적으로 중국하고 손잡는 이런 기조를 유지하면서, 실리주의를 중시하는 미국과 산업적으로 협력해 공장 증설이나 자본 투자를 이어나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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