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 일시 유예 위한 첫 단추 끼워
WTO 회원국 만장일치 동의 필요…2003년 HIV 등 복제약 허용 전례
백신 개발사 기술이전 뒤따라야 효과…업계는 면제 반대, 백신 배포 확대 주장
WHO 사무총장 “백신의 공평함을 위한 역사적 결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현우 기자] 미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에 대해 지지했다.  

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경제 부양을 위한 ‘미국구조계획’ 이행 상황에 대한 연설 후 취재진 문답에서 자신과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하고 있다면서 다만 그 결정은 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USTR도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했다. 캐서린 타이 USTR 대표는 성명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백신 제조를 확대하고 원료 공급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타이 대표는 “행정부는 지식재산 보호를 강력히 믿는다”며 “하지만 이 대유행을 종식하기 위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보호 면제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전 세계적인 보건 위기이며 코로나19 대유행의 특별한 상황은 특별한 조치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행정부의 목표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가능한 한 빨리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는 것”이라며 다만, 지재권 면제 협상과 관련, WTO 규정에 따른 보호를 포기하는 데 필요한 국제적 합의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재권 면제되면 백신 대량 생산 가능…하지만 여러 관문 넘어야

지재권 면제와 더불어 화이자·모더나 등 백신 제조사의 기술 이전까지 이뤄지면 백신 생산 역량을 갖춘 국가들이 복제 백신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전 세계적인 백신 공급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재권 면제가 되더라도 백신 제조사들이 의무적으로 기술 이전 등 양산을 위한 정보를 내 줄 필요는 없다. 먼저 세계무역기구(WTO) 164개 회원국이 지재권 면제에 모두 동의를 해야 한다.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안 된다.

추가로 국가간의 지재권 면제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곧바로 다른 나라가 백신 생산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재권 면제란 복제약 생산을 허용하겠다는 의미다. 백신 개발사가 기술과 설비, 노하우를 모두 공개하거나 알려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당장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등 주요 제약사들이 속한 국제제약협회연맹(IFPMA)은 성명을 내고 미 행정부 입장에 "실망했다"면서 백신 지재권 면제는 "복잡한 문제이며, 단순하지만 틀린 해답"이라고 반발했다.

지재권이 면제되도 아프리카와 같은 곳의 제약업체들은 백신을 제조할 설비나 능력이 준비돼 있지 않은데, 차라리 백신 제조량을 늘려 배포를 확대하는 것이 더 빠른 해법이라는 게 IFPMA의 주장이다.

또 복잡한 백신 생산 과정으로 인해, 지재권 완화가 곧 생산 증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공급망의 병목현상을 줄이고 백신에 들어가는 원재료의 희소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도 지재권 면제는 개발도상국으로의 기술 이전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업계는 지재권 면제가 제약업체들의 혁신 유인을 줄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제약사들의 (특허를) 훔치는 것을 백악관이 돕는다면 누가 미래에 치료제나 백신에 투자하겠느냐"며 '바이든의 백신 특허 도둑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리기도 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백신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백신에 대한 제조 특허 등 지재권 보호를 유예, 생산을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돼 왔다.

제약사가 특허권 행사를 포기하고 다른 나라의 복제약 생산을 허용하는 구상인데, 일부 선진국은 자국 제약사를 의식해 반대할 가능성이 있어 협상이 쉽지만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해 백신 접종에 상당한 여유가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백신은 물론 원료물질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미국은 제약사의 지재권을 한시적으로 면제해 저개발국가와 코로나19 전파가 심각한 국가를 대상으로 백신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국제 사회의 압박을 받아왔다. 

이런 가운데,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미국의 지재권 지지 결정에 “지혜로운 리더십을 보여줬다”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5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백신 지재권 면제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과 USTR의 지지는 세계 공중보건 위기를 바로잡기 위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라고 했다.

그는 또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USTR의 성명을 첨부하며 “기념비적인 순간이다. 이는 백신의 공평함을 위한 역사적 결정”이라면서 “위기의 순간에 모든 사람의 건강을 우선시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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