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마치 ‘제2차 조국대전’이 다시 일어나는 광경이다. 발단은 조국 전 장관이 쓴 『조국의 시간』의 출간이었다.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내려가는 심정”으로 썼다는 이 책이 나오자 30만명이 넘는 지지자들이 구입하며 조국 응원에 나섰다. 하지만 그렇게 당당하게 책을 내는 모습에 대해 반성할줄 모르는 자기도취라고 비난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대선정국으로 들어가는 시점임을 의식해서인지 조국도 작심한듯 본격적인 참전에 나서는 모습이다. 조국은 이런 저런 이슈들로 다시 연일 뉴스의 한복판에 서는 인물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의 조국 부녀 일러스트, 그리고 조국의 ‘김학용 오기(誤記)’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먼저 성매매 관련 기사에 내용과 무관한 조국 부녀를 연상시키는 일러스트를 <조선일보>가 사용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아무리 실수였다고는 하지만, 사과문 이상의 담당자에 대한 문책 정도는 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인두겁을 쓰고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조국은 조선일보에 대해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고, 특히 조선일보의 해당 기사와 삽화를 그대로 사용한 <LA조선일보> 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소송 가능성도 내비친 상태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국의 시간』의 내용 가운데, 금품 로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신학용 전 의원을 김학용 전 의원으로 잘못 기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조국은 “김학용 의원님께 대단히 죄송하다”는 SNS사과를 했지만, 당사자인 김학용은 "조 전 장관은 자신의 페북에 미안하다는 사과 한 줄 달랑 언급했을 뿐, 당사자인 저에게 그 어떤 방식의 정식 사과도 없었다”면서 "어물쩍 페북 한 줄로 넘어가려 하지 말고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공개적으로 사과하시라”고 요구했다.

사실 피해의 정도를 굳이 따지자면, 출마를 계획하고 있는 김학용이 범죄자로 실명이 적시됨으로써 입게 된 피해는 매우 직접적이고도 명백할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 부녀가 입은 모욕감에는 분개하여 천문학적인 소송을 말하던 조국이 김학용에 대해서는 전화번호가 없다는 궁색한 이유를 들어 SNS사과로 넘어가려한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조국의 방식대로면 김학용도 천문학적인 소송을 해야 할 판이다.

굳이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조국의 내로남불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은 “극우 유튜버가 제 차 안에 있는 전화번호를 공개한 후 알지 못하는 번호 또는 '발신자 정보없음'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있다"며 "집단 패악질은 계속된다"고 비난하는 글들을 올렸다. 그런데 우리는 조국 지지자들이 보낸 문자폭탄들에 의해 비판자들이 그동안 겪었던 고통들을 잘 알고 있다. 불과 얼마전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조국 자신이 좌표설정한 배훈천 대표가 영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았던 일도 잘 알고 있다. 자신도 그런 가해적 행위를 하고서는, 자신만 대단한 일 당한 것처럼 흥분하는 모습도 보기에 민망하다. 자신이 당하는 패악질만 문제이고, 자신이 앞장선 패악질은 당당하게 여기는 사고구조는 지켜보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자기 가족에 대한 공격과 모욕에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그가, ‘김건희 의혹’에 관한 근거없는 유튜브는 버젓이 올리고 있는 광경도 마찬가지이다. 내 가족 소중하면 남의 가족도 소중한 법이다. 마찬가지 행위도 자신이 하면 정의롭고, 남이 하면 패악질이라 비난하고, 그러니 내로남불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재판의 유리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친구들도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던 딸의 법정 발언을 스스로 알리고 나선 것도 그렇다. 오죽하면 친구들조차도 연락을 받지 않을지, 그 진짜 이유를 생각해 보았을까. 친구와의 우정과, 사실을 말해야 하는 양심 사이에서 갈등했을 친구들의 마음은 헤아려 보았을까.

조국이 그토록 비난하는 윤석열이 별장에서 성접대 받았다는 <한겨레> 오보가 났을 때, 윤석열이 이렇게까지 흥분한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명예훼손의 심각성으로 따지면야 성접대를 받았다는 윤석열이 백배는 더 당한 셈일텐데, 그는 그저 드라이하게 소송을 제기했을 뿐이었다.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 남들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대응했던가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런 부적절한 일러스트의 피해는 문재인 대통령도 얼마 전 YTN 보도에서 당했던 일인데, 사과 보도로 매듭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가족들이 수난을 당하게 된,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는 조국이 비판자들에 대해 갖고 있을 적대적 정서를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로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재판이 진행중인 마당에 책도 낸 것일테고. 하지만 조국 부부가 재판을 받고 있는 일이 독립운동 하다가 잡혔기 때문은 아니지 않나. 설마 어떤 물의를 빚어 재판을 받고 있는지를 모르지 않는다면, 일단은 재판을 통해 말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카라바조의 작품 《나르시시즘》에서 나르시스는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너무도 사랑하다가 결국 자신을 찬미하면서 호수에 빠져 죽는다. 자기애가 너무 강하면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자아도취적인 사람은 스스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에리히 프롬이 말했던 것도 그런 이유이다. ‘제2차 조국대전’으로 다시 나라가 무척 소란스럽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산적한 나라에서 이 무슨 일인가 싶다. 이 나라는 조국의 나라가 아니다. 자중자애하면서 하고 싶은 말들은 법정에서 할 수는 없는 것인지 그에게 권유하고 싶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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