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  놓인 영정사진(사진=연합뉴스)
▲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  놓인 영정사진(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완구 전 총리가 14일 71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이 총리는 2012년 초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증을 진단받고 골수이식을 받고 회복하여, 2013년 국회에 재입성 당 원내대표로 화려하게 재기했으나 2016년과 최근에 혈액암이 재발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갔다. 

고인은 한때 ‘포스트 JP’로 불리면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잇는 충청권의 대표 주자로 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혀왔다. 

충남 홍성 출신인 고인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74년 행시에 합격해 관료 생활을 시작해서,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과 로스앤젤레스 주재 총영사관 내무영사, 최연소(31살) 경찰서장과 충남·북지방경찰청장 등을 지냈다. 

40대 중반이 되던 1995년 민자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고, 이듬해 당시 자유민주연합이 초강세를 보인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충남지역(청양·홍성)에서 당선돼 주목을 받았다. 16대 국회에서 재선에 성공하면서 신한국당 당 대표 비서실장과 자민련 대변인,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을 거치면서 정치력을 인정받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세종시 특별법’을 축소하는 수정안을 추진하자 이에 항의하면서 지사직을 전격 사퇴했다. 이후 이명박 정권하에서는 숨죽이며 비자발적으로 정계에서 떨어져 있어야 했다.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19대 총선에서 국회 입성을 노렸지만, 그해 초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고 8개월간 골수이식과 항암치료 등 병마와 싸워야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벌어진 재보궐 선거에서 80%에 가까운 득표로 당선하면서 국회에 재입성했다. 이어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중앙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또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로 취임하면서 단번에 충청권을 대표하는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으로 부상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2015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불거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에 연루돼서 총리 취임 70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2017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지병이 재발하면서 정계 복귀는 이뤄지지 못했다. 2020년 총선에서 당에서 출마 제의를 받았지만, 출마를 하지 않고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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