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상준 기자]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반도체·통신·정보 보안 장비·레이저·센서 등의 수출을 제한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피해도 예상되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반도체와 자동차 분야에서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앞서 지난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경제에 즉시 가혹한 비용을 부과할 것”이라며 “러시아 군대와 첨단 기술에 피해를 주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그러면서 중국 정보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적용했던 경제 제재 방식(해외직접생산품규칙)을 대(對) 러시아 제재에도 적용했다. 해외직접생산품규칙은 제3국에서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사용됐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강력한 조치다.

또한 지난 26일(현지시간)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추가 제재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내 산업계에서는 러시아의 퇴출이 가져올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 국내 업계 순위권 기업들도 영향받나

이번 러시아에 대한 수출 통제 및 금융 제재로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전자제품 수출 및 현지 생산 전반이 영향권에 있다. 제재 기술 대상에는 반도체, 통신, 정보보안 장비, 레이저, 센서 등이 포함됐다.

특히 모든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생산에는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대부분 들어가는 만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생산하는 반도체 제품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자체는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이때문에 사실상 모든 반도체 제품이 미국의 기초 설계 기술이 적용됐다는 것이다. 국내 주요 반도체 생산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이 적용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들어가는 스마트폰 수출도 타격이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약 30%로 1위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이번 제재로 러시아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출이 제한될 것"이라며 "직접 수출은 많지 않지만, 전자제품 수출 제한으로 전반적인 반도체 사용량이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자동차·부품 수출 타격 불가피

이번 수출 제재로 피해가 예상되는 품목은 승용차와 자동차 부품이다. 먼저 이들은 한국의 대 러시아 수출 품목 중 수출 비중이 25.5%와 15.1%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산 차량용 반도체가 들어간 자동차 수출도 일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일본 르네사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5개 업체가 주로 공급한다.

앞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합병 사례에서도 서방의 제재 여파로 한국의 러시아 승용차 수출은 이듬해 62.1% 급감했고 타이어도 55.7% 감소한 바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러시아로 수출하는 부품의 90% 이상은 현대차와 기아 러시아 공장으로 납품되고 있다. . 현대차·기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 23만대 규모의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제재로 수출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이들 기업의 생산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희귀가스 공급 점유율 50% 

모든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네온(Ne)과 크립톤(Kr) 등 희귀가스 공급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50%가량 점유하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반도체 식각공정에 사용되는 크립톤은 지난해 전체 수입 물량의 48.2%가 우크라이나(30.7%)와 러시아(17.5%)에서 수입됐고, 노광공정에 쓰이는 네온 중 28.3%가 우크라이나(23.0%)와 러시아(5.3%)에서 들어왔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이미 전 세계 완성차 기업들이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희귀가스 공급 차질에 따라 수급난이 더 심화할 경우 국내 완성차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현지 기업 피해 전망…정부, 긴급금융 지원 나서

러시아 시장 위축으로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과 국내 수출 기업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생산 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에서 세탁기, 냉장고 등 주요 가전 분야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에 세 번째 신공장을 건설 중인 오리온도 원재료 수급난에 대비해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 중이다.오리온 관계자는 "현재 원재료 3개월 치를 비축한 상태로 당장 문제는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원재료 수급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앞서 25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관계장관회의(녹실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사태 주요 현안을 점검하고 피해 기업을 대상으로 수출신용보증 무(無)감액 연장, 보험금 신속보상·가지급 등 무역금융 지원을 하기로 했다. 또 수출입 피해기업을 위해 필요하면 최대 2조원의 긴급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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