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최지훈 기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이자 아워홈을 설립한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12일 별세했다고 유족측이 전했다.

고(故) 구 회장은 1930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태어나 해군사관학교를 진학해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호국영웅기장 등 다수의 훈장을 수여 받았다. 군복무 시절인 1957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셋째 딸인 이숙희씨와 결혼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디파이언스 대학교 상경학과를 졸업한 그는 귀국 후 충북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

이어 구 회장은 삼성그룹에서 제일제당 이사, 호텔신라 사장 등으로 10여년간 근무했지 1969년 삼성이 전자사업 진출을 선언하자 당시 금성(현 LG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성으로 이직한 그는 럭키 대표이사, 금성사(현 LG전자) 사장, 럭키금성그룹 부회장, LG반도체 회장, LG엔지니어링 회장, LG건설(현 GS건설) 회장 등을 맡으며 LG그룹에서 전문경영인으로 활약하다 2000년 LG유통의 식품서비스 부문을 분리 독립해 아워홈을 설립했다.

특히 그는 산업화 시절(1960~1980년대) “나라가 죽고 사는 기로에 있고 기업은 돈을 벌어 나라를 국민을 부강하게 해야한다”는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식품·화학·전자·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영인으로 활동했다.

럭키 대표이사 재직시절인 1980년 구 회장은 ‘기업과 나라가 잘 되려면 기술력만이 답’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수출 강국들을 따라잡고 그들보다 앞서기 위해 기술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이렇게 기술력에 집중한 구 회장은 1981년 페리오 치약을 개발해 ‘국민치약’의 반열에 올렸으며 1983년에는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폴리부틸렌테레프탈레이트(PBT)를 개발하면서 화학산업 부흥의 초석을 다졌다.

국내외에서 ‘최초’ 타이틀을 여러 차례 획득한 구 회장은 2000년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해 약 20여년간 아워홈을 진두지휘했다. 구 회장이 이끈 아워홈은 2000년 매출 2125억원에서 지난해 매출 1조7408억원으로 8배 이상 성장했고 식품·외식·기내식·호텔운영 등 사업의 다각화도 이루었다.

다만 최근 벌어진 ‘남매의 난’으로 인해 아워홈은 자녀간 내분에 휩싸인 상태다. 당초 구 회장 장남인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이 회사 대표직을 수행했으나 지난해 보복운전으로 징역 6개월·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으면서 대표직에서 내려오게 됐다.

당시 여동생들인 미현·명진·지은 세자매는 주주총회·이사회를 통해 구본성 전 부회장의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지난달말에는 임시 주총 소집 및 이사진 개편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재계·업계는 구본성 전 부회장이 막내 동생이자 아워홈 CEO인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을 밀어내기 위한 시도로 해석했다.

한편 고인은 최근까지 회장 직함을 유지했으나 고령으로 인해 회사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