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이야기] 정체성 케이(K)와 우리들의 블루스, 그리고 제주섬

2022.07.17 17:42:22

오리엔탈리즘과 한국철학사상 부재론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 번은 들어봤을 테지만,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라는 말은 어렵다. 게임에 익숙한 세대라면 “대항해시대”라는 말이 더 익숙할 이 시기에 유럽사람이 동양에 대해 상상했던 것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상반된 두 가지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곧잘 인용되는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이 그렇듯이 낯선 것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는가 하면, 19세기 제국주의자의 식민지배 정당화 논리가 그렇듯이 낯선 것을 비문명적이고 미개한 상태로 보는 계몽주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아직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한국철학 부재론도 마찬가지다. 한국철학사상 부재론이란 동아시아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여 식민지로 삼은 뒤에 만들어낸 정당화 논리다. 한‧중‧일 삼국 가운데 오랜 문명국을 자처해온 중국에 비하면 뒤늦었지만, 서구 근대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유신(維新)을 이루었으므로 대동아공영권을 이룰 책임이 있다는 것이 당시 일본의 주장이었다. 이에 비해 사대주의에 빠져 중국을 답습해온 한국은 고유의 철학 사상이 없어서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인간중심주의와 합리적 계몽주의라는 야심 찬 기획으로 시작되었던 모던(Modern)에 대한 반성이 나온 지도 한 세기가 지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리엔탈리즘이나 한국철학 부재론을 새삼 꺼내는 것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하지만 세계화와 외환위기, 신자유주의를 겪으면서 “경쟁력 강화”라는 구호가 일상다반사가 된 지금도 “정체성”은 여전히, 그리고 오히려 더욱 강조되고 있다. 케이팝(K-Pop)과 케이푸드(K-Food)를 거쳐 케이컬쳐(K-Culture)에 이른 시장 경쟁력이 다름 아닌 “케이(K)”라는 정체성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케이 컬쳐(K-Culture)의 케이(K)

“화이트 오스카”로 불렸던 아카데미 시상식은 물론, 바로 그 시상식에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화 생태계를 교란시킬 것”이라고 비판받았던 오티티(Over-the-Top) 서비스에서도 우리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으며, 호평받고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소식이다. 미국, 아니 세계 중심이라는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초록색 “츄리닝” 차림으로 우리 드라마를 재현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에미상 작품 후보에 지명되면서 외국어 드라마로는 최다 부문 후보 지명 기록을 썼다고 하니 축하할 일이다.

이쯤 되면 지금까지 동북아시아 후발 근대국가로 우리를 얕보았던 이들을 향해 단전에 힘을 주고 헛기침 한 번쯤은 해봐도 좋을 성싶다. 특히 한국철학사상 부재론을 만들어내고 선전했던 제국주의 망령에게는 꼭 되돌려주고 싶다. 그런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는 순간 문득 “그 케이(K), 곧 우리 정체성이 뭐란 말인가”라고 되묻게 된다. 초록색 “츄리닝”, 딱지치기, “달고나”로 불리는 설탕 과자 뽑기, 줄다리기, “짤짤이”로 불리는 동전치기, 구슬치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술래잡기, 오징어 게임 등이 “케이(K)”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려서 한 번쯤은 해봤을 놀이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은 아니다. 오스카와 오티티서비스가 환호하고 덩달아 우리도 으쓱해지지만, 그래서 그런 것들이 코로나와 함께 하는 포스트 팬데믹(With COVID-19, Post-Pandemic) 시대 우리 경쟁력이라고 누누이 강조되지만, 정작 하나하나의 놀이나 그것들로 만든 콘텐츠가 우리 정체성은 아니다. 그것에서 정체성을 찾아서 “이것”이라고 보여주기도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콘텐츠”가 아니라, 그것에 녹여 넣은 삶의 방식과 힘이 “케이(K)”요, 우리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보는 이와 사는 이를 담아 안은 섬, 제주 블루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한국 여행 상품권이 걸린 게임에 참가했던 외국인 대부분에게 한국은 낯선 곳이다. 이들에게는 정체성을 비롯한 한국의 세세한 정보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게임에 참가해, 최근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은 낯선 곳을 둘러보고 쉬는 기회를 얻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한국이란 “보는 곳”이지, 머물러 사는 곳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한국 정체성”이라는 묵직하고 두꺼운 정보보다는 “이국정취(異國情趣, exoticism)”라는 관심거리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볼 일만은 아니다.

제주를 배경으로, 지나가고 있는 우리 일상을 회고하면서 기억해두려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자막 없이는 알아듣기 어려운 제주어가 정겹게 들렸던 까닭은 그 낯선 말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 사람의 블루스”가 아닌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제목이 제법 잘 어울렸다. 물론 제주 사는 사람으로서는 제주가 그렇게 흑백사진처럼 조명되는 것이 불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섬 밖에서 보는 시선과 섬 안에서 보는 시선을 차별 없이 다 품에 담아 안는 것이 또한 섬의 정체성이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길을 대신해서 만든 스페인 순례길이 “까미노 데 산티아고”, 곧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을 걸은 수많은 이들 가운데 제주 사람 하나가 제주로 돌아와 만든 길이 “집으로 들어가는” 제주올레다. 그 길을 걷자고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지금의 제주를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제주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제주다움”이란, 그래서 원주민과 이주민, 올레 기획자와 올레꾼,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가 손잡고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지, 이미 완성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김치완 교수는 서울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학위와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 「주자학적 전통에서 본 다산의 인간관 연구」로 다산학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에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섬 인문학 연구단’에 참여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부학장, 총장추천관리위원장, 기초교양교육원장, 신문방송사 주간, 교육혁신본부장, 탐라문화연구원 편집위원장, 전국국공립대학 신문방송사주간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왜 지금 난민: 난민의 출현과 인식 (2021, 공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와 「포스트 혼종성 시대 대학교양교육에 대한 철학적 검토」( 탐라문화 69,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2022)을 비롯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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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dasan@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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