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재보선을 앞두고 다시 야권 연합이 쟁점이 되고 있다. 물론 당분간 야권 연합의 핵심은 본격적인 여야 대결 무대인 2012년의 양대 선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거대 집권 여당에 맞서야 하는 야권으로서는 분산된 힘의 결집이 절실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소선거구 위주의 국회의원 선거제와 승자독식의 대통령제는 야권 연합을 부르는 제도적 배경이 되고 있다.

연합정치는 주로 내각제 국가들에서 나오는 말이다. 여러 정당이나 정파가 연합해 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경우를 말한다. 선거를 위한 연합보다는 선거 이후 정부 구성을 위한 연합이 대부분이다. 1개의 정당으로 독자적인 정부 구성이 어렵거나, 또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연합이 필요한 경우 이루어진다. 일본이나 이탈리아에서처럼 선거 이전에 후보나 정당이 연합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선거연합은 주로 전국적인 정당 연합보다는 지역별 후보 단일화나 지역(단위)정당들의 연합 형태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연합정당에 대한 투표와 의석 배분 방식을 구체적으로 선거제도에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좌우 합작, 중도통합 등의 세력 연합에서 정당 통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합정치가 있어왔다. 정당 통합으로서 연합정치는 1954년 ‘사사오입개헌’에 대응키 위한 야당 통합 운동 이래 간헐적으로 지속돼 왔다. 수없이 반복돼 왔던 한국 정당의 이합집산만큼, 그 과정에 정당 통합도 많이 있었다. 권력 투쟁이 분열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었다면, 반면에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은 다시 통합과 연합을 촉진시켰다.

정당 연합 또는 후보 연합의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13대 대선 후보 단일화 논란이었다. 무엇보다 민주화 운동 진영에게 군부정권의 퇴진은 공통의 절실한 과제였고 승자독식의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의 단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야권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후보단일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소수가 된 집권여당은 정당재편을 통한 합당을 통해 정치연합을 구성했다. 1990년의 ‘3당합당’이 그것이었다. 이때부터 영남기반의 거대 보수 진영과 호남 기반의 민주개혁 진영이라는 정치균열 구도가 구조화됐다.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는 DJP연합을 통해 집권해 성공했다. 정치연합을 통해 집권한 대표적 사례이다. 노무현 정권 또한 사실상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과정에 지지가 하락하자 보수 야당과의 대 연합, 이른바 대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제안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정반대의 모습인 또 하나의 ‘3당합당’ 구도였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제 권력 구조에서 1 대 1 경쟁을 위한 정치연합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민주화 이후 정치세력의 분화 또는 다원화라는 시대적 변화 추세와 충돌하고 있다. 87년 체제의 구심점인 승자독식의 대통령제는 정치세력 구조에서도 87년 체제를 여전히 강요하고 있은 셈이다. 앞으로 우리의 정당체제 자체가 양당체제로 되거나, 이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정치권력 구조 자체가 승자독식이 아닌 다원적 체제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다원적 정당체제로 가는 것이 시대적 변화에 부합하는 민주주주의의 발전 방향이라 생각한다.

알다시피 최근의 연합정치론은 2008년의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등장했고 2010년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구체화됐다. 민주 진영과 야권은 이명박 정부가 초래하는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은 공유했지만, 대응할 수 있는 힘은 미약했다. 제도정치 영역에서는 소수였고, 추락한 국민 신뢰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강하고 새로운 야권의 재건이 필요했다.

이런 점에서 당초 야권 연합은 단순한 연합이 아니라, 야권의 새로운 탄생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질적인 변화를 통한 새로운 탄생은 이루지 못했다. 야당 재탄생의 촉매제로 참여했던 시민사회 세력은 연합의 중재자 역할에 그쳤다. 사실 시민사회 세력 또한 기존의 야당 세력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어쨌든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연합은 그 자체로도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됐다.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위축되기 시작했던 민주 진영이 처음으로 반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 국회, 지방정부의 선거정치 영역 전체에서 추락했던 민주·진보 진영이 처음으로 회복세를 보인 셈이다.

2012년 총선, 대선에서 연합은 야권의 진로에 관건처럼 보인다. 가치연합, 복지연합 등이 제기되고 있지만 사실상 1 대 1 대응 구조의 구축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 현재는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 대부분이 연대·연합의 필연성을 역설하고 있다. 더구나 연합을 역설하는 자신들로 단일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 연합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더욱 필요한 선거 전략이다. 여러 형태의 연합정치론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연합정치를 둘러싼 대단히 세심한 구상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연합정치는 정당 통합이 되지 않는 한, 결국 후보 단일화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권교체라는 공통의 과제가 진보적 정치세력의 강화라는 진보 진영의 의지가 연합정치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도 주목할 부분이다. 연합정치 구상이 어떻게 되든 대통령 후보의 야권 단일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대신 먼저 치르는 총선에서 국회의원 후보의 야권 단일화가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민주당의 기득권 양보가 연합정치의 실현을 위한 제1의 과제처럼 여기저기서 거론된다. 민주당 지도부 스스로도 과감한 양보를 하겠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양보가 아니라 지도부나 현역 자신들의 과감한 양보도 포함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 양보가 진정한 기득권의 포기를 통한 연합정치의 실현일 터이다. 그렇지 않은 하향식 양보 조치는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갈등을 더욱 크게 할 수 있다. 또 소수 야권 정당들에서는 민주·진보 연합의 당위성을 빌미로 한 ‘알박기’의 정치 행태도 없지 않을 듯싶다. 야권의 연대·연합, 정권교체의 당위성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선거공학과 권력 게임의 정치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연합정치가 작은 차이를 넘어서는 연대이면서, 편싸움을 위한 우리 편만의 단결전략인 것처럼 말이다.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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