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박근혜 맹폭격에 보수-진보 결집…문재인 리더십 시험대에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이정희 캠프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이정희 캠프

“충성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기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다. 해방되자 쿠데타로 집권했다. 유신독재의 철권을 휘둘렀다. 뿌리는 속일 수 없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가 전날(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대선주자 TV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원맨쇼였다. 지지율 1%도 안 되는 후보가 45% 안팎의 지지율로 양강구도를 형성한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압도했다. 흔히 하는 말로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박 후보는 시종일관 이 후보의 공격에 끌려 다니면서 당황하기 일쑤였고, TV토론으로 지지율 상승의 모멘텀을 찾고자 했던 문 후보는 자기 존재감을 부각시키는데 실패하면서 유권자들로 하여금 “어, 문재인도 있었네”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게 했다.

각 후보 간 TV토론의 이해득실을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자기진영의 지지층 결집과 상대 지지층의 이탈은 동시성을 갖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지지층이 모두 결집할 수도 어느 한쪽이 분열되면서 다른 한 쪽이 결집할 수도 양 지지층이 모두 이탈되면서 부동층이 증가할 수도 있다. 그만큼 여론은 단면적 담론이 아닌 총체적 담론이 복합성을 띠면서 형성된다.

이 후보에게 돌직구를 잇따라 맞은 박 후보 측이 “콘크리트 지지율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며 내심 반기는 이유도, 무난했던 문 후보 측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양자토론을 요구한 것도 집토끼와 산토끼의 비동시성과 무관치 않다.

각 후보간 이해득실 보다 중요한 것은 돌발변수로 등장한 ‘이정희와 통합진보당’이 14일 남은 대선과 이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대선에) 나왔다.” 이 한마디로 야권 지지층에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이 후보의 결기가 대선과 이후 세력판도에 이른바 ‘나비효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핵심은 범야권단일화 구성 범위의 변화다. 당초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와의 야권연대에만 매달린 문 후보 측은 안 전 후보의 백의종군 이후 ‘국민연대’를 통한 세력통합에 나섰다. 민주통합당과 안철수 세력, 진보정의당, 시민사회진영 등을 묶는 연합공조다.

비례대표 부정 경선 사태 이후 ‘종북’ 낙인이 찍혀버린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3%를 얻기 위해 잃어야 할 중도층 표가 더 많다는 판단에서다. 이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측은 지난 9월 23일 ‘김인성 보고서’를 발표하며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의혹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뺑소니 사건”으로 규정했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은 부정 경선 의혹과 관련해 “이 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다”며 진보정의당 등 범야권과 언론에 날을 세웠다. 

이정희, TV 토론회에서 부정경선 의혹 언급 안한 까닭은?

“21세기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재현된 중세의 마녀사냥은 정확히 저를 겨냥했다. (중략) 이른바 진보언론과 진보지식인, 어제까지 연대했던 다른 야당까지도 진실을 외면하고 보수세력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짓밟았다. 민중이 만들어낸 진보정당은 그 어떤 공격에도 죽지 않는다. 이제 진보정치의 심장이 다시 뛴다.”

이 후보는 지난 9월 25일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앞에서 가진 대선 출정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당시 보수진영은 물론 야권에서조차 대선 출마를 강행하는 이 후보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 후보는 대선 출마 이후 70여일 동안 언론의 관심도 못받은 채 쌍용차, 유성기업 농성장 등 현장중심 행보에 매진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이 후보가 전날 토론회에서 부경 경선 의혹과 관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초 정치권 안팎에선 이 후보가 문 후보를 겨냥, 참여정부 실정론과 미온적인 야권연대 방침 등을 거론하며 공격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박 후보가 TV토론 첫 모두발언에서 보좌관을 잃은 슬픔을 언급했듯이 이 후보 역시 “부정경선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뺑소니”라고 언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침묵했다. 부정 경선과 관련해선 해명도 반박도 특정 정당을 향한 공세도 하지 않았다. 일각에서 이 후보 측이 내부적으로 야권연대 방침을 정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앞서 통합진보당은 대선 방침에서 ‘진보적 정권교체 실현’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진보정당의 정체성 계승 발전과 독자성 강화’도 강조했다. 애초부터 야권연대와 독자완주를 동시에 추구한 셈이다. 이 때문에 이 후보 측이 범야권의 비토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해 전격 사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는 이 후보가 대선 투표용지 인쇄 직전인 10일 이전에 사퇴할 것이란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통합진보당이 구 민주노동당 시절인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 진보진영 내부의 독자론과 대립각을 세우며 반MB를 이끌었다는 점, 경기동부연합이 1997년 대선 당시 권영길 후보를 내세운 ‘국민승리 21’에 참여했다가 DJ(김대중) 지지로 돌아섰다는 점 때문에 결국 문 후보에게 힘을 보탤 것이란 관측이다.

하지만 문 후보 측은 현재까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는 없다”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정책적 연대도 선거연대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문재인 캠프 박용진 대변인은 이날 오전 영등포당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박 후보를 향해 “변별력이 없는 3자토론이 아닌 양자토론에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이 후보의 토론 주도로 문 후보의 정책비전이 묻혔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이 후보를 두고 “야권의 계륵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전날 토론회에서 ‘박근혜 저격수’ 역할을 자임, 침체된 야권 지지층에 분위기 반전을 위한 모멘텀을 제공했고, 박 후보로부터 1979년 10.26 사태 이후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6억원의 사회 환원을 받아내는 등 적잖은 성과를 얻어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이 후보가 구도전선 없는 대선판에 “과거청산 없이는 미래를 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당초 민주통합당이 구상한 ‘과거 대 미래’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정희 대 노무현’, ‘MB정부 심판론 대 노무현정권 심판론’에서 벗어나 과거 역사성 간의 대립구도를 만들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공은 문 후보에게 넘어왔다. 기존의 ‘국민연대’ 구성 범위에 변화를 줄지, 반MB연대에서 벗어나 선명한 이슈로 전선을 가를지, 모든 것은 문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선택에 달렸다. 

지지율 1%도 안 되는 이 후보는 전날 “한국 정치사에 진보정당이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자기 확신을 보여 준 반면 40%대의 문 후보는 “왜 문재인인가”에 대해 여전히 모호하다는 평가가 많다. 문 후보에게 ‘이정희’는 계륵일까, 구세주일까. 문 후보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이유다.

한편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V토론 전인 3∼4일 전국 성인 1천500명을 대상으로 유선전화(80%) 및 휴대전화(20%) 임의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을 통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자대결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0.8%에 그쳤다. 박 후보는 48.9%, 문 후보는 43.9%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p다. / [폴리뉴스 최신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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