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 위원장, “삼성이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시민단체, “이재용 부회장의 면죄부 돼선 안 돼”

삼성그룹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9일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삼성그룹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9일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강필수 기자] 삼성의 준법경영 여부를 감시하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이르면 이달 말 공식 출범한다.

김지형 초대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9일 자신이 대표변호사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원회 출범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인 김지형 위원장을 비롯한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됐으며 삼성 내부가 아닌 외부 독립기구인 점이 특징이다.

삼성 소속이 아닌 외부 위원은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봉욱 변호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6명이 선임됐다. 여기에 삼성 내부 인사로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고문이 참여해 위원회는 총 7인으로 구성됐다.

이 중 내부인사인 이인용 삼성전자 총괄고문은 MBC 기자 출신으로 지난 2005년 6월 삼성전자 홍보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을 맡았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배이기도 하다. 또한 김 위원장이 삼성전자 백혈병문제 조정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활동 시한을 정하지 않은 상설기구로 삼성의 7개 계열사가 활동비를 분담하며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SDI·삼성전기·삼성 SDS·삼성화재 7개 계열사에서 준법감시 업무를 위탁받는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준법감시위 구성이 삼성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에서 양형을 낮추기 위한 ‘면피용’이 아닌지 우려와 삼성의 진정한 의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고 밝혔다.

위원장을 수락한 배경에 대해 김 위원장 “본인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구성·운영 전반에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를 삼성이 수용해 위원장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부회장과 최근 직접 만났고,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이 자발적으로 준법감시위의 독립·자율을 약속하며 변화 의지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완전한 독립성·자율성을 정말 확실히 보장할지에 대해 그룹 총수의 확약이 필요했다”며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 진정한 의지에 대한 우려·의심을 밝혔고, 이 부회장이 완전한 독립성·자율성을 약속하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준법감시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존중해 글로벌 수준의 준법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번 위원회 출범은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숙제’에 대한 삼성의 답변이라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지난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후 지난해 8월 대법원이 뇌물액을 추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지방고등법원에 파기환송해 2심 재판이 다시 진행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는 지난해 10월 첫 공판에서 이 부회장과 삼성에게 과감한 혁신과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 재벌체제 폐해 시정 등 3가지를 언급했다.

정준영 서울고법 형사1부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6일 열린 3차 공판에서 “정치 권력으로부터 또다시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을 그룹 차원의 답”을 4차 공판이 열리는 이달 17일까지 가져오라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삼성 차원의 ‘뇌물 요구 불응’ 방안은 위원회의 운영 방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삼성은 과감한 혁신과 재벌체제 폐해 시정 방안도 마련해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주문한 준법감시제도의 아이디어는 미국 연방법원의 양형기준에서 나왔다. 기업이 준법감시를 위한 기준을 만들고 경영진을 교육하며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내용이다. 이 제도가 시행된 지난 1991년 이후 미국의 기업 문화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국내 각계에서도 이번 위원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위원회가 이 부회장 재판을 위한 면피용 출범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주문을 삼성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해 이 부회장의 양형 수준을 낮추는 명분으로 삼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금속노조 등 시민단체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위원회 설립이 이 부회장의 형량을 낮추려는 행동이라면서 “삼성은 지금도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갖은 수단으로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을 내고 “준법감시위원회 설치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범죄 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되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여연대는 “법적 권한이나 책임이 없는 위원회가 내부 쇄신을 위해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법적 경영기구인 이사회의 독립성·투명성 강화에 먼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위원회가 성공적으로 정착해 적절한 감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우려와 의문 제기는 과거 삼성의 행보와 관련이 있다. 삼성은 지난 2006년 삼성 엑스파일 사건 때도 80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고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을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적발 사건에서도 당시 이건희 회장이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을 해체했지만 미래전략실을 다시 설치하고 이 회장도 경영에 복귀한 사례가 있다.

이에 따라 위원회의 정착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김 위원장이 언급했던 ‘이 부회장이 약속한 완전한 독립성·자율성’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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