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천막 덮은 기와집 흉물 방치, 주민 불편 호소
2010년 7월 세계문화유산 지정된지 올해 10주년
초가 위주 한옥 개축정책 더위추위 등 정주여건 해쳐
관광객 편의시설 턱 없이 부족, 상업시설 난립 조짐
문화재청·경북도·경주시, ‘주민 없는 민속마을’ 대책을

경주시 강동면에 자리 잡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324호)' 양동마을의 전경. <폴리뉴스 사진>
▲ 경주시 강동면에 자리 잡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324호)' 양동마을의 전경. <폴리뉴스 사진>

“유네스코 지정 10주년이 됐지만 혈연의 가치가 사회와 국가로 이어지는 양동마을의 전통적 모델을 잃어버릴 위기에 선 지금,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있습니다.”(이지락 여강 이씨 17대 종손)

“유네스코가 양동마을을 지정한 이유는 ‘600년 전통 씨족마을 주거형태의 유지’라는 인문학적 가치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세계유산으로서의 근거는 소멸됩니다.”(이수원 세계문화유산양동마을운영위원회 위원장)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10주년을 앞둔 경주 양동마을이 정부와 지자체 문화재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경관 훼손과 주민의 정주여건 악화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최근에는 세계유산으로 함께 지정된 안동 하회마을의 대표적 문제로 지적돼 왔던 상업시설마저 난립할 조짐이어서 여강 이씨와 경주 손씨, 양대 가문을 중심으로 이어온 유교적 씨족마을의 정체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휴일인 지난 12일 오후 방문한 경주시 강동면 소재 양동민속마을은 예년 같으면 봄꽃을 보러나온 상춘객들이 한창 붐벼야 할 시기임에도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인적이 뚝 끊긴 모습이었다.

마을 입구의 인상은 슬레이트 지붕에다 포장을 친 구멍가게와 플라스틱 개량 기와를 올린 궁도장과 승마장까지 설치돼 있어 고즈넉한 정취의 민속마을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았다.

양동마을 입구의 구멍가게. 개울의 폭이 갑자기 좁아지면서 유속이 늦어져 바닥에 물이 고여 있다.  <폴리뉴스 사진>
▲ 양동마을 입구의 구멍가게. 개울의 폭이 갑자기 좁아지면서 유속이 늦어져 바닥에 물이 고여 있다.  <폴리뉴스 사진>

마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나와서 쉴만한 벤치나 정자가 없어서인지, 관광객은 물론 주민들마저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여서 봄볕 속의 양동마을은 난데 없는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이날 양동마을을 둘러보고, 만난 주민들의 얘기를 종합한 결과 가장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문화재의 보존과 주민들의 정주 여건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있었다.

특히 마을을 지나는 통행로 양쪽에 주로 모여 있는 기와집들 가운데 10채는 지붕의 노후화로 파손이 심해 방수포를 덮은 채 방치돼 있었다.

방수포를 덮은 무인가게에 총선 벽보가 부착된 모습. <폴리뉴스 사진>
▲ 방수포를 덮은 무인가게에 총선 벽보가 부착된 모습. <폴리뉴스 사진>

주민들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지붕을 수리하고 싶어도 현행 문화재보호법 상 평기와가 아닌 골기와나 초가지붕으로 해야 하는 규제 때문에 손을 못 대고 있다.

참다 못한 가옥주 14명이 지난 2014년 11월 ‘양동마을 평기와 개축 건의서’를 제출했지만 문화재청의 심의위원회가 ‘평기와의 전통가옥으로서의 가치는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아 6년여를 표류하고 있다.

지붕이 심하게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는 가옥. <폴리뉴스 사진>
▲ 지붕이 심하게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는 가옥. <폴리뉴스 사진>

관계 당국은 고비용의 골기와 대신 초가지붕 개축을 조건으로 예산 지원을 제안하고 있지만 이 역시 주민들에게 달갑지는 않다.

초가는 집의 높이가 낮고 비가 오면 처마가 좁은 데다 벌레가 발생하는 등 현대가옥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있다.

양동마을은 이미 전국의 7개 민속마을 가운데 초가집의 비율이 가장 높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민속마을의 전통성 보존에 정책의 중심을 두면서 생활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들은 정주 여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공동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강조하고 있다.

 '보물 제411호' 무첨당 마당에 활짝 핀 배꽃. <폴리뉴스 사진>
▲  '보물 제411호' 무첨당 마당에 활짝 핀 배꽃. <폴리뉴스 사진>

이수원 세계문화유산양동마을운영위원장은 “마치 유물을 전시하듯 정부가 전통마을을 관리하는 정책을 거주 중심 정주형으로 보완하지 않으면 은퇴 후 귀향을 주저하는 현실은 개선되기 어렵다”면서 “특히 경주시는 양동마을에 생활권으로 더 가까운 포항시와 협력해 경북동해안의 유교문화권 관광인프라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이 언급한대로 회재 이언적의 묘소는 포항 북구 달전읍에 있으며 기북면 덕동마을도 여강 이씨 집성촌이어서 경주와 포항, 영덕으로 이어지는 경북동해안의 유교문화권은 북부권에 버금가는 한국 유교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강호진 포항고문화연구회 회장은 “경주시가 국내 세계문화유산 14개 중 가장 많은 4개를 보유한 위상에 걸맞게 신라의 유산만큼 조선 유교에도 정책의 비중을 분배해야 한다”면서 “신 경북도청이 북부권으로 이전한 뒤 문화재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주낙영 경주시장과 이강덕 포항시장이 협력할 최적의 모멘텀이 바로 양동마을이다”고 강조했다.

‘보물’ 무첨당을 지키고 있는 이지락 여강 이씨 17대 종손은 “무첨당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건축물이 아니라 이곳을 지키며 살다 간 16명의 사람들에게 있다”면서 “양동마을이 현대인들에게 전통 혈연중심사회의 가치를 전하려면 그 안에 사람이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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