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8일, 최초로 5.18의 현장인 전남도청 앞에서 40주년 기념식이 진행되었습니다. 40년이 지났지만, 5.18은 여전히 대한민국 민주화의 길잡이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가장 폭력적인 정치권력에 대항하여 가장 담대하고 치열한 저항으로 맞섰던 광주의 기억은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정신이자 이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서슬 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고 표현한 바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커다란 호수”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지난해 방탄소년단이 5.18을 담은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듯이, 5월 광주는 ‘민주주의의 꺼지지 않는 밑불’이 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미래를 밝히고 있습니다.

5.18은 승리의 역사, 그러나 여전히 국민적 화해와 통합을 위한 과제가 산적

5.18은 87년 6월항쟁과 민주화운동으로의 복권 과정을 통해 승리의 역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광주 5월 영령들과 광주시민들에 대한 전 국민의 부채 의식과 연대감이 이후 민주화 운동을 확산하고 촉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6월 민주항쟁으로 분출된 힘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정치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군사정권에 의해 광주사태 또는 폭동으로 불리던 5.18은, 95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학살의 주범인 두명의 대통령이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로 처벌되고, 97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정해지면서 5.18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복권되었습니다. 

또한, 2011년 5.18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써 민주와 인권을 위한 전 인류의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되었고, 최근에는 2017년 촛불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뿌리로서 세계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광범위한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적 배상 등, 국민적 화해와 통합을 위한 과제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적해 있습니다.
‘북한군 침투설’을 유포하는 등 2008년 이후 10년 보수집권기에 행해진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으로 인해 완전한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가 확산되었고, 2018년 2월에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조사위원 구성을 둘러싼 보수야권의 방해로 지난 해 말에야 조직구성을 완료한 진상조사위원회가 40주년을 앞둔 지금 시점에 본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조사위원회는 군 지휘체계와 집단발포 명령자, 민간인 살상과 성폭력 등 인권침해, 암매장 등 집단 학살, 헬기 사격, 북한군 개입여부 등 당시의 실상과, 이후에 행해진 조직적인 은폐와 왜곡 공작까지, 최장 3년 동안 조사하여 국가보고서로 제출할 예정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존해 있는 상태의 조사는 사실상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위원회에 강제조사 등 전권이 부여되어야 하지만 현 법률 상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광주전남 지역의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전원의 발의로 5.18관련 8개 법안의 개정안을 상정할 계획으로, 진상규명 외에도 역사적 사실 왜곡에 대한 처벌, 관련자 보상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진실의 토대 위에 5.18을 국가의 보편적 가치로 재정립하고, 
민주체제 완성의 동력으로 삼아야 함

진상규명을 통한 진실의 토대 위에 5.18을 국가의 보편적 가치로 재정립하고, 전 국민적 차원의 화해와 통합을 이루는 과정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헌법 개정안 발의시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을 지향하고 계승해야 할 민주적 가치와 이념으로 헌법 전문에 포함시킨 바 있고, 40주년 기념 언론 인터뷰를 통해 향후 헌법 개정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화해와 통합을 위해서는 5.18의 피해자를 보다 광범위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진압군의 폭력에 의해 불구가 되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 가장을 잃고 가난과 생이별에 고통받아온 사람, 진압군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 등, 광주의 피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참상으로 계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보상과 사회적 치유 과정을 국가주도로 시행하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광주의 정신은 6월 항쟁과 촛불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힘으로 작동하고 있고, 이제 그 힘을 되돌릴 수 없는 민주체제 완성으로 이어갈 책임이 문재인 정권과 여당에 주어져 있습니다. 

특히 40년 전 광주의 피를 자양분으로 하여 현 사회와 정치권의 주력으로 성장한 이른 바 86세대에, 스스로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지난 해 이른바 조국사태로 인해 86세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있었지만, 21대 총선을 통해서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검증과 선택 과정을 거쳤다고 보입니다. 문 대통령이 앞서 인터뷰에서 얘기했듯이, 80년대는 광주를 기억하고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민주화 운동 자체였고, 80년대 대학을 다닌 모든 이들은 그와 같은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제 50대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지도부에 포진한 그들이, 미래 세대를 위한 민주체제 완성의 주역으로 활약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단순한 절차적 민주주의에 국한되지 않고, 과거 권위주의 정치의 잔재를 청산하고 국민의 진정한 화해와 통합, 그리고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를 구현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경제적 시민권을 대중에게 돌려줄 수 있는 사회경제적 담론과 실천이 
5.18의 가치를 완성해가는 중요한 과제

5.18이 정치적 민주화 요구로 시작되었지만, 근저에는 사회경제적 혜택을 독점한 세력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식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통해 영구집권체제를 갖출 수 있었던 데는, 냉전과 분단이라는 정치적 배경 외에 국가주도 산업화를 통해 성장한 경제권력과 정권과의 강고한 결합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정치적으로 억압되고 경제적으로 성장의 혜택에서 배제된 대중(민중이라 표현되던)이 있었습니다. 부마항쟁과 광주로 이어진 정치적 저항과 이후 경제적 민주화 요구는 대중의 관점에서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87년 민주항쟁과 함께 이루어진 전국적인 노동자 투쟁의 폭발적인 증가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5.18의 이념을 완성시켜가는 과정에, 경제적 시민권을 대중에게 돌려줄 수 있는 사회경제적 담론과 실천은 정치적 민주화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과거 민주화를 통해 집권한 정부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권 10년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의 이면에는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대중의 비판여론이 큰 몫을 했습니다. 80년대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세계경제의 지배적인 기조는, 작은 정부와 시장근본주의를 내세우며 자본과 교역이 자유화된 국제적 무한경쟁의 구조를 강요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IMF위기를 겪으며 신자유주의 체제를 사실상 전면적으로 수용했고, 그 결과는 경제적 불평등의 급격한 확대로 귀결되었습니다.

성장우선, 경쟁우선의 논리 속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 경제사회적 이중구조가 고착되고 소득분배 구조도 지속적으로 악화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도 자족적인 집단이기주의 속으로 도피하며 사회 혁신세력으로서의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노동, 복지, 분배 등의 가치를 배제했던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 민주화의 결실로 등장한 정부가 경제적으로 무슨 차별성이 있는가를 묻게 되는 상황으로 전개되며, 정치적 지지기반도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만의 민주주의와 경제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손에 주어져 있음

다시 10년이 경과한 문재인 정부는,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한층 심화된 환경이지만, 경제적인 새로운 담론과 실천을 이끌어가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국제적인 가치사슬 붕괴 등으로 인해 신자유주의 논리가 지배력을 상실하거나 크게 약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유한 역량과 가치를 기반으로 대한민국만의 시스템을 찾아갈 수 있고, 더 나아가 세계경제의 새로운 질서를 선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K-방역이라 불리는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배려와 공존의 공동체적 가치가 무한경쟁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경험을 전세계와 함께 했습니다. 이런 경험 위에서 시장경제의 도그마를 깨는 전국민 대상의 고용보장제도를 검토하고 있고, 4차산업혁명과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대타협 논의도 정치권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40주년을 맞이한 5.18, 이제는 ‘미래세대에게 5.18은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대한민국만의 민주주의와 경제시스템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청년세대의 꿈과 도전을 가로막는 ‘헬 조선’의 극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경제적 민주화의 담론 위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성장과 조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만들고 실제 정책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자부하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 담대한 상상력과 실천적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이번에야말로 5.18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민주화 역사의 가치 부여 등, 진정한 과거사 청산에 성공함으로써, 근현대사 교육을 주저할 만큼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80년 광주의 피를 먹고 자란 86세대가, 40년이 지나 5.18이 본인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엄중한 역사적 책무를 혼신의 힘을 바쳐 완수해야 할 것입니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