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1 (토)

  • 흐림동두천 9.6℃
  • 흐림강릉 9.9℃
  • 흐림서울 10.2℃
  • 흐림대전 9.7℃
  • 대구 10.8℃
  • 울산 11.4℃
  • 광주 8.8℃
  • 부산 10.3℃
  • 흐림고창 8.4℃
  • 맑음제주 11.7℃
  • 흐림강화 9.5℃
  • 흐림보은 8.5℃
  • 흐림금산 9.7℃
  • 흐림강진군 9.1℃
  • 흐림경주시 11.6℃
  • 흐림거제 9.7℃
기상청 제공

[기고]의열단원 박재혁과 그의 친구들①

박재혁 의열단원, 부산경찰서 투탄 100주년 기념 특별기고

부산경찰서 투탄, 의열단원 박재혁 의거 100주년이 되다

1920년 9월 14일 화요일. 어제부터 내렸던 가랑비는 오전까지 내리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그쳤다. 2시 30분경 부산부 금평정 부산경찰서 앞에 조선옷을 입은 한 훤칠한 청년이 자동차에서 내렸다.

경찰서 왼쪽에는 일본인 거류민단 사무소가 있었고, 계단 위쪽에는 부산 이사청이 있었다. 이 지역은 일제의 부산지역 지배와 침탈의 심장부였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중국인 복장을 한 청년이 중국 고서적을 팔기 위하여 경찰서로 들어간다.
중국말을 하며 책을 파는 척하다가, “나는 상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를 잡아 우리 계획을 깨트린 까닭에 우리는 너를 죽이는 것이다.”

안전핀을 뽑아 던지자, 우레와 같은 폭음이 들리고 경찰서가 파괴되고 수명의 경찰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고 죽었다. 주변에는 의열단의 선언을 적은 전단이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신문 보도를 보면 영화와 다르다. 조선옷을 입은 청년은 거침없이 경찰서로 들어갔다. 경찰서장과 면담이 있다고 하자, 경비는 그 당당함에 제지를 하지 않았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1년 6개월이 넘었지만 부산지역에는 뚜렷한 독립투쟁이 없었다.

경찰서는 2층 건물이었다. 1층 서장실에는 하시모토 경찰서장과 계원들과 집무 중이었다. 경찰서장과 안면이 있는 사내는 헝겊으로 쌓인 폭탄에 불을 붙이고자 했지만 잘 붙지 않았다.

비가 온 탓이리라. 당황하는 사이 폭탄 심지에 불이 붙자 황급히 마룻바닥에 던졌다. 거리는 불과 1m 정도였다. 설상가상 폭탄은 서장 의자 다리에 맞아 오히려 청년 쪽으로 굴러온 듯하였다.

그 순간 폭탄은 굉음을 내면서 터졌고 흰 연기가 서장실에 가득 찼다. 1층 유리창이 전파되었다. 폭탄 파편은 사방에 날려 흩어졌다. 청사의 천장 창문과 벽면 판자 등 여러 군데가 훼손되고 파괴되었다.

서장이 앉았던 안락의자의 다리도 분쇄되었다. 천장을 관통하여 2층 사법실 마루판을 관통하여 근무 중인 와다 사법 주임의 의자와 책상 등을 파괴하였다.

경찰서 마룻바닥은 피로 물들어 현장의 처참함을 보여주었다.

폭탄을 맞은 경찰서장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 폭탄을 던진 청년은 오른쪽 무릎뼈를 크게 다쳐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청년은 부산 출신의 의열단원 박재혁이었다.

의열단의 의열 기록을 상세히 기록했던 류자명은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투탄 의거를 의열단의 본격적인 의열투쟁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박재혁은 의열단원 최초로 의열투쟁의 거사를 하였고 성공하였다. 비록 경찰서장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무엇보다 3・1운동 이후 침체에 있었던 독립운동의 불을 다시 지폈다. 죽음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열투쟁이 가열하게 일어나는 출발점이었다.

일제 침략의 교두보이자 대륙의 관문으로 제2의 오사카로 불렸던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일본 신문은 동경 한복판에 투탄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본과 조선의 민족 융화는 근본적으로 실패라고 비난하였다. 그만큼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투탄은 일제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일제의 손에 죽기보다 스스로 적의 감옥에서 순국의 길을 택했다.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1921년 5월 11일 오전 11시 20분이었다. 그의 나이 26살이었다.

부산경찰서 투탄이 일어난 지 2020년 올해가 거사 100주년이다. 그리고 내년이면 순국 100주년이 된다. 박재혁은 의열단 최초로 의거를 성공시킨 독립투사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부산독립유공자 1호이다. 하지만 그의 생가터는 부산 동구 범일・좌천동 가구거리의 주차장으로 변했고, 그의 동상은 부산어린이대공원 한적한 곳에 세워져 있다.


오로지 행동으로 보여준 의열단원 박재혁과 친구들

 


 

박재혁은 1921년 5월 11일 옥중 단식을 하여 순국하였다. 생일이 며칠 남지 않은 날이었다. 그는 외동아들인 그는 홀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에 남에게 교훈 될 멋진 말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어떠한 기록을 그 자신이 직접 남긴 것이 없다. 집안 내력도 지극히 평범하여 내세울 것이 없다. 어쩌면 위인으로 쓸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다.
그가 바로 의열단원 박재혁(1895.05.17.~1921.05.11.)이다.

그의 삶은 빈곤하고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사실을 알려줄 객관적 증거는 때론 기록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나 유가족의 자료가 없다. 유일한 혈육인 동생은 너무 어려 기억이 없고, 모친 역시 아들의 역사적 행동에 어떤 이야기를 후손에게 남기지 않았다. 남겨진 것은 사진 몇 장과 호적등본이 전부다. 보통학교를 졸업했지만, 기록이 없다. 부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했지만, 학적부에는 인적 사항 이외에 대부분 비어있다.

학교에 다녔지만 추측할 자료조차 없다. 가장 친한 친구인 최천택과 오택의 기록이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하지만 서로 엇갈린 진술도 있다.

그나마 일제 경찰과 당시의 신문 자료가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려줄 유일한 자료이다. 의열단원 박재혁은 오로지 행동으로 그 삶을 증명한 독립투사이다.

많은 독립 유공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일대기를 온전히 복원하기는 쉽지 않다. 자료가 부족하기보다 없기 때문이다. 독립 유공자도 일제의 재판 기록과 신문 보도 등으로 그의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감옥에 가지 않고 체포도 되지 않은 사회운동가 혹은 독립운동가는 유공자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과도한 애국주의적 입장에서 과대하게 평가하여 영웅화해서는 안 된다.

한 인간이 독립투사로 성장하는 데에는 혼자되는 것이 아니다. 박재혁에게는 친구들이 항상 있었다.
박재혁, 최천택, 오재영(오택), 김영주, 김인태, 왕치덕, 김병태, 백용수 등은 그저 그런 평범한 친구들이 아니었다.

죽마고우였던 부산 범일동・좌천동의 정공단 골목길 친구들은 일제강점기 사회운동을 하거나 독립투사의 길을 걸었다. 물론 그 친구들도 많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한 인간의 삶은 무수한 인간관계의 연결 고리에 얽혀있는 인트라망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박재혁 역시 그의 친구들이 있었기에 독립투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죽마고우 다수가 독립투사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박재혁과 그 친구들은 그 길을 걸어갔다.

 

 

 








[폴리 4월 좌담회 전문 ④] 본격적인 대선정국, 잠룡 기지개에 개헌론 등장
<폴리뉴스>와 월간 <폴리피플>은 지난 4월21일 “4.7재보선 이후, 대선 앞으로 가속도 높이는 여야 정계개편”을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이날 좌담회에는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 그리고 본지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가 참석했다. 김능구 :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보선 이후 전망을 했는데, 이제는 대선 정국으로 성큼 들어서고 있다. 각 당들이 전당대회를 통해서 대선을 치를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데, 실제로 5월 전당대회를 통해서 곧바로 대선 정국으로 가고 특히 민주당 같은 경우는 경선이 불과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어쨌든 현재 대선 여론조사에서 보면 조금씩 차이들은 있지만 양강 구도로 보여진다. 홍형식 : 2강 1중으로 봐야될 것 같다. 갤럽은 아직도 비보조 인지도 조사라고 해서 주관식 형태로 하는데, 조사방법에 따라서 수치의 차이가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2강 1중, 어떤 데서는 양강 이렇게 표현이 나온다. 어찌됐든 이번 재보궐 선거 이후 지지율의 흐름을 보면, 야당 쪽에는 윤석열은 반문 세력이 지지하는 거라고 예상이 됐던 거고, 여권에서는 약간의 지지율변화가 눈에 띈다. 비문 성향


[카드뉴스] 팽팽한 찬반 논란의 '지역상권법'…뭐길래

[폴리뉴스 김미현 기자]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지역상권법)’제정을 놓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붙고 있습니다. 이 법은 지역상생구역이나 자율상권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스타벅스 같은 대기업 계열 점포의 출점을 제한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대상은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등에 포함되지 않아 규제를 받지 않는 대기업입니다. 법안이 시행될 경우대기업이 운영하는 직영 점포의 신규 매장을 열기 위해서는 지역상인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임대료 상승에 따른 소상공인의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막고자 마련됐습니다. 복합 쇼핑몰이 들어오면 주변 임대료가 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유통업계는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떨어뜨리는 과도한 중복 규제라고 반발에 나섰습니다. 또 재산권과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데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보다 자영업체의 고용률이 낮아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상권의 특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당 법안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소상공인과 대기업 모두'상생'을 이룰 수 있는정책이 절실한 때입니다.

[카드뉴스] 日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 “안전성 불확실”

[폴리뉴스 김유경 기자]日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 “안전성 불확실” 최근 일본이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물탱크에 보관하고 있던 방사능 오염수 125만톤을 30년에 걸쳐 방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방사성 물질 농도를 법정 기준치 이하로 낮추고 천천히 방류할 것이니 상관없다고 합니다. 오염수에는 유전자 변형, 생식기능 저하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삼중수소(트리튬)가 들어 있습니다. 삼중수소가 바다에 뿌려지면 한국 중국 등 인근 국가 수산물에 흡수돼 이를 섭취한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또 스트론튬90은 극소량으로도 골육종이나 백혈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안하무인입니다. 한 고위관료는 “중국과 한국 따위에는 (비판을) 듣고 싶지 않다”고 발언했습니다. 미국은 “국제 안전 기준에 따른 것”이라며 일본에지지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작 후쿠시마 사고 이후 현재까지 사고 부근 농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지난해 10월 “일본의 ALPS장비 성능에 문제가 없고 오염수 방류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냈다고 합니다. 안심할 수 있는 안전대책, 기대할 수 있을까요?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