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갈등 시간 갈수록 심화
소주병 재활용 위한 정책 마련 시급

'이형병' 처리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롯데주류 강릉공장의 야적장에 경쟁사인 진로하이트의 '이즈백' 소주 빈 병이 방치된 모습. <사진=폴리뉴스>
▲ '이형병' 처리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롯데주류 강릉공장의 야적장에 경쟁사인 진로하이트의 '이즈백' 소주 빈 병이 방치된 모습. <사진=폴리뉴스>

 

[폴리뉴스 김미현 수습기자] 이형병 소주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계속 사그라지지 않자 환경경영과 상생을 위해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지난해 4월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이 출시 몇 달여 만에 1,000만 병을 판매하는 등 대박을 터뜨리면서 소주 업계는 이형병(異形甁) 갈등에 휩싸였다. 이형병이란 ‘모양이 다른 병’이라는 뜻으로 소주 업계들이 2009년 자율협약을 맺고 모양과 색을 통일한 소주병 표준용기와 규격이 다른 빈병을 말한다.

업체들은 360mL 초록색 공용병을 공동으로 제작하고 사용함으로써 타사의 빈병을 회수해 상대회사의 라벨만 제거하고 씻어 재사용 할 수 있다. 병 모양이 다를 때는 타사 제품의 이형병을 분류한 뒤 각 사에 돌려주는데 이 과정에서 처리 비용이 따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초 하이트진로가 병의 규격을 표준과 다르게 제작해 한정판으로 출시하기로 했던 ‘진로이즈백’의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경쟁 소주업체가 선별·보관 부담을 받게 됐다. ‘이즈백’ 빈병이 가장 많이 회수된 롯데주류 측은 표준용기를 사용하면 들지 않을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비표준화병이 과다하게 섞여 들어오면서 선별해야 하는 물량이 증가하므로 인건비에 영향을 미치고, 표준용기 회수량이 부족해지는 한편 새 병을 추가 생산하고 구입하는 등의 비용이 늘어난다는 설명이었다.

급기야 지난해 롯데주류 측이 자사에 혼입된 ‘이즈백’ 빈병 몇백만 개를 돌려주지 않고 쌓아두면서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결국 정부가 개입해 롯데주류는 장기 보관 중이던 ‘진로이즈백’ 이형병을 개당 10.5원의 비용을 받고 하이트진로에 넘겨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며 갈등을 일단락했다.

지난 1월부터 환경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는 ‘비표준용기 교환 및 재사용 체계 개선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목적은 비표준용기의 실태를 조사하고 모든 문제점을 분석해 적정 교환 비용과 교환 조건을 제시하고 빈용기 재사용 체계를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끝나지 않은 갈등

이형병 갈등은 결국 지난달 22일 제조사들이 소주 녹색병이나 흰색 병이나 1대 1로 맞교환하고, 맞교환 없이 비공용병을 사들일 경우 1병당 선별수수료 17.2원을 내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성명서를 통해 “제조업체들의 이번 이형병·공용병 1대1 맞교환 합의는 사실상 이형병 유통을 촉진하는 행태”라며 “공용병 재사용 협약은 자원 절약과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효과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제적 편익은 물론 국가 발전에도 이바지해온 합의이기 때문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며 규탄했다.

그러나 하이트진로 측은 수수료는 업계 10개사가 동의한 부분이며 환경 문제에 관한다면 재사용을 많이 하는지가 관건인데 자사의 ‘참이슬’은 주류업체 중 가장 많은 초록병을 생산하고 있고 가장 많은 초록색 소주병에 대한 공용화를 실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즈백 빈병 역시 재사용 체계를 갖추고 공용병과 비슷한 수준의 재사용률을 보이고 있어 이형병 재사용 이슈는 문제의 소지가 없다며 “지난 5월 93.8%의 진로 공병을 회수하고 81.0%를 재사용했으며 6월에는 100.6% 회수하고, 87.9% 재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롯데칠성 측은 진로 측 주장에 대해 “논점이 벗어난 이야기”라며 “회수율은 녹색병이나 흰색병이나 모두 보증금제도 때문에 높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소주병은 한번 쓰고 깨지 않기 때문에 재사용률도 수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그것을 가지고 제도가 잘 지켜진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 문제에 손 놓은 환경부?

환경부는 이런 갈등에 대해 비표준용기 활성화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자율협약으로 정해진 만큼 기업 간 협의를 권장한다는 견해를 밝히며 비표준 용기 유통을 수용하는 입장이다.

다른 지방 소주 업체도 “소주 표준화병 사용은 소주 제품의 차별화를 어렵게 한다”며 “앞으로 소주 종량세 도입으로 소주 시장이 축소될 경우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회사의 경영활동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주 이형병의 유통 허용은 10년 넘게 지속된 공용병 재사용 시스템의 훼손으로 사회적 비용 부담과 환경 문제의 시작점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최근 이상 기후 등으로 재난이 많이 발생하면서 환경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기업은 물건을 생산하면서 환경에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시장점유율과 영향이 큰 대기업이 시장을 더 키우기 위해 기존에 잘 지키고 있는 공용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또 “기업경쟁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상품의 내용과 질로 승부를 봐야 한다. 비표준 병 이용을 마케팅으로 삼는 것은 환경 문제가 중요한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비용의 절감과 환경 보호를 위해서는 주류 빈 병의 규격화를 위한 규제 마련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롯데칠성 측은 “다양한 형태의 이형병 출시가 자유로워진다면 우리 회사도 이형병 출시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국내 주류도매업계 경쟁이 치열한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이형병들이 출시될 것이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이후 판매 감소 시 공병 처리문제로 환경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작년 진로 이즈백의 판매 급증 이후, 진로 외 여러 소주 회사도 비표준용기를 사용한 신제품 출시를 고려하고 있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환경부에서 환경 보호를 위해 페트병도 무색으로 교체하는 등 다양한 환경정책을 내놓으면서 왜 10년 동안 잘 지켜져 왔던 공용병 시스템이 해체될 위기에 대해 왜 손을 놓고 있는지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 전문가는 또 “비표준용기가 지속해서 늘어나면 추가 선별 교환 비용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비표준용기 확산 방지 대책 및 재사용체계 개선 등 제도 마련을 위한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