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外 사회에 화폐 전달할 수 있는 대안 찾아야…고용보장제, 기본소득, 국책투자은행 등
‘돈 많이 남기는 것’ 아니고 ‘우리의 좋은 삶에 필요한 것 조달’하는 게 경제의 실질 정의
‘살림살이 경제학’은 낭만적 이념이나 복고주의 아니다. 고도의 산업국가 조직하는 가장 성공적 원리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폴리뉴스와 인터뷰에서 '살림살이 경제학'은 국민의 좋은 삶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이은재 기자>   
▲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폴리뉴스와 인터뷰에서 '살림살이 경제학'은 국민의 좋은 삶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이은재 기자>   

[폴리뉴스 대담 김능구 대표, 정리 김자경 기자] 지난해 초 시작된 코로나19는 단순히 의료 문제, 안전 문제를 넘어 전 세계인의 생활패턴과 자본주의 시스템, 국가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었지만 코로나가 언제쯤 종식될지 아무도 모르고,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폴리뉴스>는 2021년 ‘새해를 여는 사람들’ 특집으로 지난 1월 21일 서울혁신파크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에서 지구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소장을 만나 그의 제안을 들어봤다.

홍기빈 칼폴라니연구소장은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의 목표를 성장이나 자본축적에 두지 않고, 모든 국민이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을 ‘살림살이 경제학’이라고 부른다"며 "살림살이 경제는 고도의 산업국가를 조직하는데 가장 성공적인 원리”고 설명했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는 '거대한 전환'을 쓴 칼폴라니 사상에 입각하여 '경제와 사회를 따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경제학'을 연구한다. 홍 소장은 "칼 폴라니는 경제를 두가지 방법으로 정의했다. 아껴서 돈을 많이 남기는 것, 그리고 나와 우리의 좋은 삶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것"이라며 "첫 번째 정의를 형식적 정의, 두 번째 정의를 실질 정의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경제를 자꾸 첫 번째 정의로만 착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경제의 목표를 경제성장이나 자본축적에 두지 않고, 모든 국민, 모든 인류가 정신적·문화적으로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 이것을 저는 ‘살림살이 경제학’이라고 부른다"면서 "살림살이 경제는 낭만적인 이념이나 옛날에 있던 복고주의가 아니다. 고도의 산업문명, 산업국가를 조직하는데 가장 성공적인 원리라고 믿는다. Planhus-hallning. 스웨덴이 그 예이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코로나 이후로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등에는 돈이 몰리고 실물경제는 돈이 안몰리는 '자산 인플레이션'과 관련 1980~90년대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 즉 금융탈규제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지금 같은 금융구조에서는 자산 인플레가 안 일어나면 이상한 일"이라며 "돈이 풀리면 은행을 한 번 매개로 해서 풀리게 되는데, 은행이 완전히 영리기업처럼 수익성이 높고 리스크가 적은 부분에만 돈을 대출한다. 신규투자로 고용이 창출되는 산업경제로 풀지 않고 자산시장으로만 보낸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산인플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폐가 은행 외에 대안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전달될 수 있는 제도를 생각해야 된다"며 "고용보장제라든가, 기본소득, 영국 노동당에서는 국책투자은행을 얘기하기도 한다. 과감하게 주택담보대출 같은 건 국민연금으로 넘기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소장님에 대해 ‘이색적인 경제학자’라고 소개한 기사가 있더라. 일반 경제학자와는 폭이 좀 다르다고 할까. 연구소장을 맡고 계신 칼 폴라니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색적인 경제학자라. 제 학부가 경제학이었다.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이 있는데 둘 다 ‘경제는 사회와 따로, 독자적으로 작동한다’는 걸 전제로 가르치고, 시스템도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저는 도저히 그걸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외교학과로 갔고, 박사 공부는 정치학에서 했다. 보통 정치경제라고 얘기하고, ‘지구정치경제학’이라고 국제정치학의 한 분과다. 

사회과학의 한 부분으로서 경제 현상을 이해하려는 방법론인데, 2차대전 이전에는 케인스나 슘페터 등 이런 방법론을 추구하던 경제학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2차대전 이후에 이게 완전히 분리가 된 거다. 저는 2차대전 이전에 있었던 방법론으로 되돌아가려고 유학 가서 2차대전 이전에 있었던 경제사상서나 경제학 방법론을 공부했다. 

제가 보는 건 사회라든가 문화라든가 정치라든가 사회현상 전체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가, 그 속에서 사람들의 경제생활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가에 초점을 둔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다. 특히 제도의 변화, 제도와 제도를 뒷받침하고 있는 사회적인 권력 관계, 사회 전체 의식과 문화의 변화, 이런 변화에 초점을 두는 게 제가 하는 경제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대안적인 방법론을 찾다가 발견한 게 칼 폴라니(Karl Paul Polanyi)다. 21세기에는 사회과학에서 마르크스나 푸코보다 더 많이 인용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가장 중요한 논지가 ‘경제는 사회에 묻어 들어가있다’는 표현이다. 영어로 embeded란 표현을 쓰는데, 경제는 정치·사회·문화·종교에 작동하고, 긴밀하게 하나가 돼서 떨어질 수 없다는 걸 가장 강조했다. 

제가 칼 폴라니 책을 ‘거대한 전환’이라는 우리말로 번역하고, 칼폴라니국제학회와의 연계 속에 한국에 아시아지부를 만들었다. 경제를 사회의 일부로서 바라보는 경제학을 연구하는 게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다. 지난 40년 간 전 지구적인 산업문명을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 이것과 다른 종류의 경제질서, 경제제도를 연구하는 대안적 경제학을 연구하는 게 목표다.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에는 자본이 몰리는데 실물경제는 좋지 않다. 이제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소장님이 주창하는 살림의 경제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 ‘K자 회복’이라는 말을 요즘 많이 쓴다. 제가 작년 4,5월부터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U자 회복이나 L자 회복이라는 말을 많이 할 때다. 제가 신묘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저는 사회과학의 일부로서 경제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에 주목하는데, 그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자산 인플레가 안 일어나면 이상한 일이다. 

70년대 이전까지는 은행, 증권, 보험이 일하는 영역이 달랐고, 금융이 다 나뉘어져 있었다. 상업은행이 증권시장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고, 투자은행은 예금을 받지 못했다. 이게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이다. 그런데 1980~90년대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가 시작할 적에 금융시스템을 그 전과 완전히 다르게 바꿔버렸다. 

이른바 빅뱅이라고 하는 금융 탈규제로 은행이 모든 금융업무를 다 할 수 있게 바뀌면서 은행들이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는 은행이 기업에 투자나 대출을 해주고, 사회 전체에 유동성을 필요로 하는 곳에 고르게 돈을 펼친다는 각본이었는데, 은행이 완전히 영리기업처럼 수익성이 높고 리스크가 적은 부분에만 돈을 대출한다. 

지금 같은 금융구조에서는 은행을 한 번 매개로 해서 돈이 풀리게 된다. 이미 2010년도 초반부터 양적완화라고 해서 은행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늘려줬지만 은행은 이걸 절대 산업에 풀지 않는다. 신규투자를 해서 고용이 창출되는 산업경제로 풀지 않고 자산시장으로만 보낸다. 그러니 자산시장 인플레가 나타나는게 지금 같은 금융구조에서는 필연적이다. 

자산 인플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90년대에 시작된 신자유주의적인 금융구조 자체도 반성하고, 화폐가 은행 외에 대안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전달될 수 있는 제도를 생각해야 된다. 예를 들면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법이다. 고용보장제라든가 기본소득, 영국 노동당에서는 국책투자은행을 얘기하기도 한다. 과감하게 주택담보대출 같은 건 국민연금으로 넘기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기업이라든가 리스크가 높지만 산업에 꼭 필요한 부분에 은행이 들어가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기존에 있던 화폐, 사회적인 구매력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금융시스템, 재정시스템 부분을 전면적으로 재검토 할 때가 되었다. 

K자 회복이 나타날 거라고 예측한 많은 사람들은 유동성, 그러니까 화폐를 지금처럼 분배하는 현행 시스템에서는 산업경제로 돈이 안 가고 자산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 모든 자산시장이 인플레로 나타날 거라고 이미 작년 초에 다 예견을 했다. 

-‘살림의 경제’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코노미(economy)의 원래 뜻이 가정 관리다. 그리스말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kos)에서 나왔는데 집안 살림이란 뜻이다. 칼 폴라니가 만든 경제를 정의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아껴서 돈을 많이 남기는 것, 두 번째는 나와 우리의 좋은 삶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첫 번째를 형식적 정의, 두 번째를 실질 정의라고 하는데, 폴라니가 하는 말이 사람들이 경제를 자꾸 첫 번째 정의로만 착각한다는 거다. 

저는 ‘살림살이 경제학’이라고 부르는데, 경제의 목표를 경제성장이나 자본축적에 둬선 안 되고, 모든 국민, 모든 인류가 정신적·문화적으로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살림살이 경제, 목표를 이렇게 가져가야 된다고 본다. 

스웨덴의 정치경제 시스템 초석이 놓인 게 1930~1950년대까지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20년 동안 집권했는데, 30년대에 내걸었던 이념은 원래 마르크스주의였다. 그런데 사회민주당이 마르크스 경제, 사회주의 안 하겠다. 대신 우리 이념은 플랜후스홀링(planhus-hallning). 모든 국민에게 정신적·문화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나라살림계획이다. 

여기에 필요하다면 대기업이라고 해서 핍박할 이유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 국민들이 잘 사는 거다. 그러니까 대기업이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대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그래서 스웨덴은 오히려 중소기업들이 차별 받고 대기업에 굉장히 우대가 편중돼 있다. 필요하면 대기업을 양성하고, 공공부문을 확장하고, 협동조합을 양성한다. 

국민 모두의 삶을 향상한다는 목표를 두고, 다중다기한 경제조직 형태를 다중다기한 방법으로 활용한다. 스웨덴의 강력한 보편 복지가 나타나게 된 이념적 기초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살림살이 경제라는 게 무슨 낭만적인 이념이라든가, 옛날에 있던 복고주의가 아니고, 고도의 산업문명, 산업국가를 조직하는데 가장 성공적인 원리라고 믿는다. 스웨덴이 그 예이다. 

홍기빈 소장은 1월 21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에서 본지 김능구 대표와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해 인터뷰했다. <사진=이은재 기자>  
▲ 홍기빈 소장은 1월 21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에서 본지 김능구 대표와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해 인터뷰했다. <사진=이은재 기자>  

 

* 홍기빈 소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제정치경제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캐나다 요크대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KPIA) 소장을 맡고 있다. KBS 심야토론,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TBS 김지윤의 이브닝쇼 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했으며, 저서로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소유는 춤춘다> <자본주의>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기본소득 시대> <코로나 사피엔스>(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권력 자본론> <거대한 전환> <붕괴의 다섯 단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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