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남북대화와 협력 지지” 한국의 독자성 역할 인정, 北 호응 물밑접촉 후 나올 듯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싱가포르 선언을 북미 협상의 기초로 삼기로 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임기 1년을 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시즌2’에 시동을 걸었다.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고 명기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북미공동선언을 인정하고 북미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의 주체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고 이에 따라 북미협상도 트럼프 정부의 성과를 이어받아 연속성을 갖게 됐다. 북미 대화 재개를 향한 전체적 윤곽은 잡힌 셈이다.

싱가포르 선언의 골자는 ‘비핵화’와 ‘북한 체제 안전보장’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해법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싱가포르 합의에도 이후 북미 간 불신의 간극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 사회의 ‘한반도 현상유지’, ‘대북 적대정서’의 벽은 강고했다. 그 결과 질주하던 한반도평화는 하노이회담 결렬로 좌초됐고 2년 이상 교착상태다. 

바이든 정부가 다시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을 북미대화의 기초로 하기로 한 것은 ‘비핵화’와 ‘북한체제 보장’ 간의 딜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또 ‘북한과의 외교’를 모색하고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하겠다고 해 북한이 바라는 동시·단계적 비핵화의 길도 열어놓았다. 북한이 원하는 새로운 계산법까지의 진전은 아니지만 ‘외교적 해법’을 우선시하면서 보다 유연하게 협상에 임한다는 메시지다.

이 같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접근법은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로 평가된다. 미국도 ‘한반도 현상유지’보다는 ‘한반도 평화정착’이 동맹인 한국을 배려하는 차원과 함께 미중 대결구도에도 ‘한반도 평화’가 좀 더 미국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연속적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미국의 사드 배치에 이은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이처럼 경직된 일촉즉발의 한반도정세를 풀어낸 것은 2018년 동계올림픽을 계기의 ‘한반도평화 분위기 조성’에 있었다.

‘남·북·미’ 축을 통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정책 추진은 탑다운 방식의 외교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과 맞물리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는 중국으로 하여금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도록 했다. 바이든 정부는 당시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중국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새로운 대북정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전략적 목표를 가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평가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즉흥적이고 개인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국 전략 속에서 ‘한반도정책’을 재검토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 현상유지 정책’에서 탈피키로 한 것은 의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성김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대행을 ‘대북특별대표’로 전격 임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인권대사 임명해 북미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일각의 예상을 깼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접고 북미협상의 창구를 공식화해 ‘대북 관여’에 본격 나서겠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성김 대표 임명에 “미국이 북한과 대화 준비가 돼 있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반긴 것도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아울러 공동성명에 ‘북한’에 대한 호칭을 북한(North Korea)이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고 명기해 국가로 인정한 것도 또 다른 대화의 신호로 해석된다.

바이든 “남북대화와 협력 지지” 한국의 독자성 역할 인정, 北 호응 물밑접촉 후 나올 듯

또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는 ‘인권’에 대해서도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을 계속 촉진하기로 약속했다”는 표현으로 수위를 조절한 것도 주목된다.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는 의미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 질의응답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 “김 위원장이 북핵 문제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무언가를 약속한다면 만날 수 있다”는 말로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공동성명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또한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한 대목은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경협 추진에 미국의 지지로 해석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남북 도로·철도 연결사업 등 우리 정부가 남북사업 추진을 가로막은 것과 비교된다.

이는 판문점 선언 존중과 맞물려 남북한 독자의 관계개선과 교류협력의 확대를 국제사회의 틀 속에서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남북교류 협력이 확대되면 한국은 북미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질 경우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보도 북미 대화에 당장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북한이 북미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대북 제재 완화’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북미대화 재개를 두고 샅바 싸움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선제적 조치를 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다만 정상회담 과정에서 이에 대해 한미 당국자들이 논의했을 가능성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 표명은 한국이 그 역할을 하게 했을 것이란 추측을 낳게 한다.

그 첫 단추는 오는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연습 실시다. 미국은 대북정책을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법’으로 추진키로 한 만큼 주목해서 봐야할 지점이다. 이미 김정은 위원장은 올 1월 ‘노동당 8차 대회’ 연설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면서 “(한국의)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 중지”를 요구한 바 있다.

북한은 하노이회담 결렬 후 미국에게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일부 제제 완화’보다는 한미군사연습 중단, 종전선언, 북미연락사무소 설치 등 ‘체제 안전’을 북미 비핵화 협상의 핵심 의제로 내세웠다. 이른바 ‘새로운 계산법’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하기는 힘들다. 이는 북한에 대한 양보로 비춰지면서 미국 내부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북한 또한 미국이 싱가포르 선언을 대화의 기초로 삼겠다는 입장만 믿고 대화의 장에 나서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북한은 하노이 결렬에 따른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이 부분은 북미, 남북 간의 물밑 접촉 속에서 하나하나 가닥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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