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출처=연합뉴스>
▲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출처=연합뉴스>

"최근 금융시장이 정상적이라 생각하시는지?" 얼마 전 금융권 한 임원이 던진 질문이다. 여기에 "미친 유동성이 오버슈팅을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답하니 그 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전 세계에 수천조원, 혹은 경 단위의 자금이 풀려나고 있다는 뉴스는 언론을 통해 일상처럼 보도되고 있다. 우리가 결코 만져보기 어려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자금. 이게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금융시장을 휘젓고 다닌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안다. 이 때문에 경기회복과 맞물려 물가상승, 즉 인플레를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이처럼 현 상황이 정상적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난 24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을 염두에 둔 매파적 발언을 했던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은이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2차례나 올린다는 관측도 나왔다. 인플레가 지표상으로 심화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정책금리를 올릴 태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미 여러 국가들도 인상 흐름을 타고 있다는 것이고, 금융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먼저 한은 기준금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연준 상황부터 팩트체크를 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제임스 불러드 등 다수의 연준 주요 인사들은 정책금리를 조기에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큰 관심을 모았다. 이 때문에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내년 초에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것이 금융시장의 컨센서스였다.

하지만 연준 수장인 제롬 파월 의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그 분위기를 뒤집었다. 최근의 인플레이션 상승세는 일시적인 것으로, 장기적으로는 목표치인 2%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입장을 확인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석유와 목재 등 경기에 민감한 원자재 지표 중 목재 가격이 급락한 것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경기회복을 알려주는 카나리아가 본격적으로 울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울어도 크게 울기 전까지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 연준 스탠스로 보인다.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미루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연준이 이처럼 인상 시기를 늦추는 분위기인데 굳이 한은이 나서서 연내에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봐야 하나.

<출처=미국 연방준비제도>
▲ <출처=미국 연방준비제도>

다음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 국가들을 봐야 한다. 대략 체코, 헝가리, 노르웨이, 브라질, 러시아, 터키 등이다. 이들 국가는 코로나19 와중에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었거나 제로금리 상태인 경우이다. G10 전후로 우리와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 중앙은행은 관망만 할 뿐 본격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지는 않고 있다. G7에 속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미국 연준과 같이 인플레가 일시적일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보더라도 한은이 굳이 나서야 할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은이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상반기 대선을 앞두고는 인상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함께 이 총재가 금융불균형을 강조한 만큼, 부쩍 늘어난 가계부채와 광풍에 휘말린 부동산을 잡아야 한다는 정책의도도 읽혀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아예 앞당겨서 기준금리를 인상하자는 것이 한은의 스탠스라는 설명이 유력해 보인다. 이게 사실이라면 매우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세계 경제는 결코 현 수준에서 그대로 가지는 않는다. 현재의 대유행 시기에서 백신 접종 이후 코로나가 진정되고 경기가 본격 회복되는 포스트코로나 시기로 접어들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 회복시기를 알아내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 4월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시제적 정책 순위결정(intertemporal policy trade-off)에 각별히 주의해달다고 권고한 바 있다. 경기회복이 언제 시작되는지,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코어물가지수 등 각종 지표가 어떤지 등에 따라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유효적절하게 선택적으로 잘 전개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무턱대고 연준보다 시기를 앞당겨서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 올바른 통화정책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가장 큰 변수 중 하나가 연준 정책금리 인상인데, 이미 한미금리차이에서 한은 기준금리가 더 높다. 연준이 올리고 우리가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한 두 번은 버틸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 한은의 스탠스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올바른 타이밍에 제대로 된 통화 및 재정정책을 써야 나라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기본이다. 정치적 변수에 휘말리거나 급작스런 정책변화를 일으키면 각 개인 차원에서도 시제적 선택이 어려워지게 된다. 경기회복의 시기에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특히 코로나19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는 더 큰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 부동산을 잡는 데는 다소 효과적일 수 있지만 빈대 잡다 초가산간 태울 수도 있다. 그래서 통화정책에는 매우 섬세한 정책이 필요하다.

한은이 코로나19 와중에 거품을 양산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정책이었지만, 이를 되돌릴 때에는 적지 않은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정책을 펴는 당국이 보다 큰 용기를 가지고 적정 타이밍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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