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아프간 신정부 패퇴의 원인은 ‘무능과 부정부패’

미국의 패퇴는 미국 패권주의의 좌절이자 패배

아프간과 미국의 전쟁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9·11 테러 배후로 꼽힌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알카에다와 그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아프간에 도피해 있었던)을 넘기라고 아프간 집권 세력 탈레반에 요구한다. 

이를 탈레반이 거부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고,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개전 두 달여 만에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미국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다. 탈레반은 지방 곳곳의 산악지대 등으로 숨어들어 게릴라전을 통해 미국과 신정부를 괴롭혔다.

밑 빠진 소모전에 지친 미국은 2014년 5월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올 4월 29일 준비하고 단계적 철수가 시작된 것이 지난 5월이었다.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탈레반의 손으로 넘어갔다.

우리나라의 6배에 달하는 영토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는데 걸린 시간이 겨우 100여 일 이라니 20년 전쟁의 결말치고는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다. 

16일 조선일보와 국민일보가 인용 보도한 스푸트니크통신의 보도는 주아프간 러시아대사관 대변인 니키타 이센코는 “아프간 정부가 붕괴할 때 가니 대통령은 현금이 가득 실린 차량 4대와 함께 탈출했다”라며 “돈을 헬기에 실으려고 했지만 전부 싣지 못해 일부는 활주로에 남겨뒀다”라는 경악할 만한 내용이었다. 

연합뉴스에서 AFP 통신을 인용 보도한 것에 따르면 압둘 사타르미작왈 아프간 내무장관은 "과도 정부에 평화적인 권력 이양이 있을 것"이라고 15일(현지 시간) 밝혔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과 사실상 정권 이양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유수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지난 4월 29일 미군이 철수를 시작할 때만 해도 탈레반의 카불 진격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미군 정보당국은 탈레반의 카불 진격까지는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탈레반은 별다른 전투를 치르지 않고 빠르게 카불까지 진격했다. 미군 철수 이후 각 지방의 정부군이 싸움을 포기한 채 탈레반에 항복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탈레반은 지난 2001년 9.11 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라는 미국의 요구에 불응해 침공을 받아 정권을 빼앗긴 이후 20년 만에 다시 아프가니스탄의 주인이 되었다.

20년을 점령해왔던 미국과 그 괴뢰정권은 대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제 미국은 3개월 만에 항복해버릴 만큼 허약한 정권에 미국의 막대한 세금과 유엔의 많은 국가를 참전케 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아프간 전쟁을 치르고 점령하는 과정에서 미군 2,442명이 전사했다. 또 나토(NATO) 및 기타 동맹국 군인 1,144명, 아프간 민간인 4만 7,000여 명, 아프간 군인과 경찰 6만 6,000여 명이 희생됐다. 

군비 또한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들어갔다. 지난 20년간 총 군비는 2.3조 달러(2700조 원)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정부군에 대한 지원에만 매년 수십억 달러가 들어갔다. 

이 ‘밑 빠진 독’과 같은 아프간에서 미국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20년 동안 들인 공은 100여 일 만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아프간의 실패는 여러모로 베트남 전쟁과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강대해져 가는 상황에서 패한 전쟁이었다면, 아프간 전쟁의 패퇴는 중국의 위협, 코로나 창궐 등으로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의 패퇴는 미국 패권주의의 좌절이자 패배이다. 이것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질서를 요동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후 세계정세를 면밀히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실패한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일치하는 부분은 아프간 신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를 첫 번째로 꼽고 있는 것이다.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절대다수의 국민 입장에서는 미국 이익 대변자의 모습이 강하지 진정으로 아프가니스탄 국가를 위한다는 충성심이나 국가관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거죠”라고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역사 속에서도 아프간은 확실한 거대 제국주의와 싸워서 이겨왔다. 영국은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3차에 걸쳐 아프간을 침공했고 한때 점령했지만 계속된 저항에 결국 독립을 인정했다.

구소련 역시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세력을 없애겠다고 1979년부터 10년 동안 전쟁을 벌였지만 5만 명에 달하는 병력만 잃고 철수했다.

 

미국과 아프간의 20년 전쟁 요약

2001년 9·11 테러 후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은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게 오사마 빈라덴의 인도와 알카에다 축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빈라덴의 인도를 거부하였고, 다른 관련자 인도 요구도 무시했다.

미국은 2001년 10월 7일 영국과 함께 항구적 자유 작전을 개시했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탈레반과 맞서 싸웠던 아프간 북부 동맹이 두 국가 연합에 참여했다.

2001년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카불 확보를 비롯한 여러 임무에서 아프간 당국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안보지원군을 설립했다.

2002년 카불의 로야 지르가가 아프가니스탄 임시 행정부가 되었다. 2004년 아프가니스탄 총선에서 카르자이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국호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 변경되었다.

NATO는 2003년 8월부터 국제안보지원군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2003년 말 국제안보지원군의 지도권을 인수했다. 이 무렵 국제안보지원군은 43개국에서 파병된 군대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들 중 다수의 군대가 NATO 회원국에서 파병된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2010년 7월 국회 본회의를 거쳐 파병하였다가 2014년 6월 23일 모든 임무를 마치고 철수하였다.

전쟁에서 퇴각한 탈레반은 무기가 열악했고 수적으로 불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게릴라전, 교외 매복, 도심 지역에서의 자살 테러 등을 전개하면서 전쟁을 소모전으로 이끌었다.

국제안보지원군은 계속 증가해서 2011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에서 활동하는 외국군은 140,000명에 이르렀다. 이들 중 100,000명이 미군이었다.

2011년 5월 1일 네이비 실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

2014년 5월 미국은 주요 작전이 2014년 12월 종료된다는 것과 이들 잔여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다고 선언했다. 

2014년 12월 28일 NATO는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안보지원군 전투 작전권을 종료했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권한을 완전히 인계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1년 5월부터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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