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위 중 144위만 고국에 돌아와
문 대통령이 광복절 언급한 6인 중 3인의 유해는 아직도 해외에
이회영 선생, 지청천, 이범석 장군은 현충원에... 김좌진 장군은 고향에
국가보훈처 “홍 장군 사례는 매우 이례적… 외교적, 정보의 제한이 가장 큰 걸림돌”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8일 국립 현충원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8일 국립 현충원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정인균 신입기자] 15일 거행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식은 많은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평생 조국 독립을 위해 일본과 투쟁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존경심과 조국으로의 봉환까지 무려 87년이 걸렸다는 죄책감에 만감이 교차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 ”늦어도 내년 봉오동 전투 승리 100주년에 홍장군 유해를 봉환했으면 좋겠다”다고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제안했고, 토카예프 대통령은 “직접 챙기겠다”며 유해 봉환을 약속한 바 있다.

이때 한 약속이 이뤄지기까지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언뜻 보면 오래 걸린 일 같지만, 국가 보훈처 관계자는 다른 유해 봉환 사업들보다 비교적 빠르게 진행된 편이라 말했다.

국가보훈처 측 관계자는 19일 <폴리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은 대통령이 국빈 방문까지 가서 부탁한 매우 특별한 케이스”라 전하며 “해외 순국 지사 유해 봉환 타국과 관련되어 있어 매우 복잡한 문제”라 말했다.

월간 독립기념관 측 자료에 따르면 해외에서 순국하신 분들의 유해는 모두 485위(2017년 12월 기준)에 달하고, 이 중 144위 (2021년 8월 19일 기준)만이 국내로 봉환됐다. 해외 순국 운동가 중 약 30%만이 봉환된 것이다.  오랜 시간 집권한 군부 정권들의 노력이 미흡했고, 그러는 사이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외교적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 주된 이유이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언급한 6인 중 3인의 유해는 아직도 해외에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기념 경축사에서 언급한 6명의 독립운동가는 어떨까? 이들 중 3명은 봉환되지 못한 70%의 독립운동가 유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2명은 다행스럽게도 현충원에 이장되었다.

문 대통령은 “광복은 항일 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다”라며, “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 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 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 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 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라며 5명의 독립 운동가들을 차례차례 언급한 후, 마지막으로 이상룡 선생의 가족과 집을 언급해 독립 운동가들의 업적을 기렸다.

이태준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다 중국으로 망명하였고, 김규식 장군의 권유로 몽골에서 의료 일에 전념하다 러시아 운게른 부대에 의해 1921년생을 마감하였다. 선생의 묘는 몽골인들이 성산으로 부르는 고륜의 남산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장덕준 선생은 1920년 간도 참변 취재를 위해 훈춘 지역에 갔다가 그 근방에서 실종되었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장 선생은 일본 군인들에 의해 끌려간 후 사라졌다. 선생이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절명했는지 알 길이 없게 때문에 선생의 유해 또한 훈춘 지역 어딘 가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하얼빈 지역에서 일본 전권 대사 암살을 시도한 남자현 여사는 1933년 일본 영사관 소속 형사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은 끝에 운명하였다. 여사의 무덤은 당시 근처에 있던 문화공원에 이장했다 전해졌지만, 현재는 묘지라 일컬어지던 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만큼 공원화되었다.

조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과학 대중화 운동에 앞장섰던 김용관 선생은 196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있는 천주교 묘지에 묻혔으나, 이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묘지가 헐려 한 줌의 재로 영면했다.

나운규 선생은 영화 ‘아리랑’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조국 독립에 기여했다. 선생은 1937년 폐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망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1992년 정부로부터 건국 애국 훈장을 받아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됐다.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항일 투쟁에 모든 것을 걸고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 기지 건설과 독립전쟁에 한평생을 바친 이상룡 선생은 1932년 중국 길림성 서란현에서 병사로 운명했다. 그의 유해는 1990년 고국으로 돌아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가 1996년 5월 서울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이회영 선생, 지청천, 이범석 장군은 현충원에... 김좌진 장군은 고향에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국립 대전 현충원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국립 대전 현충원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범도 장군의 유해 안장식인 만큼 18일 문 대통령은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 선혈들과 홍 장군의 동지들을 언급하며 자주국방의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회영 선생과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의 숭고한 애국정신 위에서 대한민국은 종합 군사력 세계 6위의 군사 강국으로 자주국방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라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언급한 4명의 독립운동가의 유해는 광복절에 언급한 지사들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가가 예우하고 있다.

이회영 선생 또한 이상룡 선생과 마찬가지로 전 재산을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쓴 것으로 유명하다. 선생은 1932년 다롄의 뤼순 감옥 36호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2년 건국훈장이 추서되며 서울 현충원에 묘지가 이장됐다.

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김좌진 장군은 1930년 공산당원에게 피살되었고, 유해는 만주 땅에 임시 암매장됐다가 1940년 부인 오숙근 여사에 의해 김 장군의 고향인 충청남도에 이장 되었다.

지청천 장군은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다 탈출하여 광복군 지휘관이 되었고, 청산리, 봉오동 전투를 승리를 이끌며 조국 독립에 이바지했다. 광복 후, 정치인이 되었다가 1957년 자택에서 급서하였다. 선생의 유해는 곧바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이범석 장군은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 정서에 가담하여 중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전해 공훈을 세우며 후에 사령관이 됐다. 광복 후 이 장군도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말년을 보냈고, 1972년 심근경색으로 타개했다. 선생의 유해 역시 바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유해 안장식 연설을 들으며,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 선혈들 또한 적지 않음을 확인했지만, 아직 풀어야 할 70%의 숙제가 남았다는 것 또한 잊지 않고 있다.

국가 보훈처 관계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봉환 문제에 투입되고 있고, 각 직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유해 봉환 문제가 외교적 문제, 정보의 제한 등으로 인해 해결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해외에 묻힌 독립 운동가들의 유해를 조속히 봉환해 오는 데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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