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積弊)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였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적폐청산을 강조해오던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자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각 부처별로 이전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박근혜 정권 인사들에 대한 검찰수사와 사법처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 집권 전반기를 상징하던 칼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적폐수사 얘기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인가”라는 언론 인터뷰 질문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해야죠. 해야죠. 돼야죠”라고 분명하게 답하면서였다. 준비된 얘기라기 보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나온 얘기로 보이지만, 어쨌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수사가 있을 것이라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대선이 임박해가는 시기임을 감안하면 더불어민주당이나 이재명 후보가 ‘정치보복 공언’이라며 공격에 나서는 모습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실제로 정권이 바뀌었을 때 여권세력을 겨냥한 수사 가능성에 대한 반발도 있을 수 있고,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이 문제를 쟁점화시키는 것도 자연스러운 선거전략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 뛰어든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참모회의에서 "(윤석열 후보가)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면서 윤 후보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청와대는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선을 코 앞에 둔 시점에 대통령이 직접 야당 대선 후보와 대치하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국민의힘에서는 대통령의 선거개입이라며 반격하고 나섰다.

나는 사실 적폐청산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동안 너무 남용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고, 여권세력이나 지지자들이 정치적 낙인찍기의 도구로 사용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윤석열 후보가 지금 시점에 굳이 그런 말을 한 것도, 마치 정권을 잡은 듯이 비쳐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청와대가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적폐수사 가능성에 대해 저렇게까지 흥분하고 대통령이 직접 격앙된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불편하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고 몇 년 동안 적폐수사에 이 잡듯이 매달렸으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적폐에 대한 수사는 하면 안 된다는 논리 또한 내로남불이기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했던 적폐수사의 정당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너무 광범하고 장기화되었던 문제는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있었던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한번은 거쳤어야 할 역사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전 정권들의 적폐는 국정과제 1호로 삼았으면서, 자신을 향한 적폐수사에는 분노하는 이중잣대는 납득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정말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적폐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고 믿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국민의 정서와는 너무도 다른 인식이다. 보수야당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데도, 정권교체 찬성 여론이 이렇게까지 높은 이유를 문 대통령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를 가리켜 ‘새로운 적폐’라고 말하는 것은 장삼이사들 사이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이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를 적폐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흥분하는 모습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어디 한 두가지의 일 갖고 그런 것인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검찰개혁’을 내걸고 ‘검찰장악’을 하기 위해 행해졌던 수많은 초법적 행위들이 있었다. 훗날 반드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경고했지만, 그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이제와서 적반하장식으로 화를 낸다. 대선정국에서도 논란이 되어온 대장동 사업 의혹, 성남 FC 후원금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같은 사건들, 그리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라임·옵티머스 사건 등도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반대 편의 비리에는 철저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비리에는 부당한 권력행사를 반복해왔다. 정의를 위해서, 법치를 위해서, 한번은 진상을 규명하고 정리하고 가야할 문제들은 쌓여있다. 그것이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치적 보복을 위한 수사가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정치보복의 악순환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서로의 철학과 가치가 따른 정책을 적폐라고 몰아붙이는 수사를 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어느 것이 정치보복이고 적폐수사인가를 가려내는 것은 대단히 정치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의 일이다. 결국 국민이 판단할 일이지, 퇴임을 앞둔 현직 대통령이 적폐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무엇이 구체적으로 얘기나온 것도 아니고 단지 원론적인 얘기였을 뿐인데, 자신들은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는 듯 과잉대응 하는 것은 민심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모습이다. 대선 한복판이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도록, 대통령의 절제가 필요해 보인다.

프랑스 철학자 제라르 벵쉬상의 말이다. “내가 정의롭다고 믿을수록, 또 이러한 믿음에 만족할수록 나는 덜 정의롭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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