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과 해삼을 채취하기 위해 어장으로 나가는 신안 홍도 해녀들
▲ 전복과 해삼을 채취하기 위해 어장으로 나가는 신안 홍도 해녀들

서남해 섬에는 어촌계가 성립하기 전부터 ‘똠‧주비‧반‧재건‧통’ 등으로 불리는 해조류 공동채취조직이 있었다. 지역에 따라 신안에서는 ‘똠’, 완도에서는 ‘주비‧통’, 진도에서는 ‘재건’이라고 불리는데, 조직의 형태나 기능은 대체로 유사하여 마을어장의 일정 구간을 점유하고 자연산 해조류를 공동채취‧분배한다. 해조류 공동채취조직의 역사적 시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세기 이전부터 마을어장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전통적 어업공동체로서 오랜 기간 어촌사회를 유지하는 중심축으로 기능해왔다.

마을어장을 관할하던 전통적인 어업공동체는 20세기에 들어서 변화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근대어업제도가 도입되면서 어장의 경계가 명확해지고, 공식적인 어업조직으로서 어업조합을 거쳐 어촌계가 등장한 것이다. 1962년에는 수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되면서 각 지구별 수협의 발족과 함께 어촌마다 일제히 어촌계가 성립된다. 어촌계는 법률상의 공식적 조직으로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공동어업 전반을 주도하고 관리하는 마을어장의 주체로서 확고한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주민들이 마을어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면허를 등록해야 하는데, 그 권리를 어촌계에 우선적으로 부여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어업공동체는 형식적으로나마 어촌계에 편입되게 된다. 관행적으로 전통적 어업공동체가 유지되더라도 법제도상으로는 어촌계가 마을어장의 어업공동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어촌계는 기존의 전통적 어업공동체가 수행하던 역할을 상당 부문 이관받고, 어장을 개척하면서 어촌공동체를 유지하는 중심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마을어장을 총괄하는 어촌계는 생산조직이지만 단순히 생산의 효율성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촌계는 공식적으로 공유자원의 평등한 접근과 분배를 통해 주민들의 생계안정에 기여하고, 내부결속력을 강화하며, 사회자본을 축적시켜 어촌공동체를 지탱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마을어장은 물권으로서 어촌계가 공동으로 점유하는 총유(総有)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촌의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이면서 지역문화의 기반이 되고, 어촌계원들의 커뮤니티 속에서 민주주의의 교육장이 되며, 문화다양성‧생물종다양성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을어장의 총유와 어촌계의 공식적 관리체계는 ‘사회적 실재’로서 20세기 한국 어촌공동체를 상징한다.

갯벌에서 채취한 가무락을 선별하는 화성 백미리 어민들
▲ 갯벌에서 채취한 가무락을 선별하는 화성 백미리 어민들

해조류 채취조직에서부터 어촌계까지 어촌공동체는 일정한 변화를 겪으면서 현재에 이르지만, 그 기능은 공유자원에 대한 관리와 소득분배의 형평성을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전통적 공동체에서는 해조류를 공동채취하고 공동분배함으로써 형평성의 가치를 실현해왔는데, 양식어업을 비롯한 바다 이용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직접적인 공동노동과 공동분배를 시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어촌공동체는 공유어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기본소득으로 전환하고 있다.

동해안이나 서남해 섬지역에서는 해녀들이 자연산 전복이나 해삼, 성게, 소라 등을 채취하면 어촌계에서 채취량을 파악하여 5:5에서 6:4 등의 비율로 소득을 나눈다. 해삼양식이 발달한 충남 외연열도에서는 어장을 어촌계에서 관리하다가 채취시기가 되면 해녀들을 고용하여 해삼을 채취한 후 마찬가지로 일정 비율로 소득을 나눈다. 물속에 있는 전복이나 해삼, 성게, 소라 등을 양식하거나 채취할 때 주민 대다수는 잠수를 못 하기 때문에 해녀를 고용하여 채취하는데, 이때 채취한 수확물을 어촌계와 해녀가 일정 비율로 나누는 것이다. 양식어업이 발달한 완도지역에서는 양식장을 분배할 때 어장사용료를 받아서 어촌계 기금으로 적립하고, 갯벌의 이용이 왕성한 화성시 백미리의 경우 낙지나 바지락 등을 채취하면 어촌계에서 수합하여 판매하고 그 수익의 일부를 기금으로 적립한다. 어촌체험이 활발한 마을의 경우 체험객들에게 갯벌 이용료를 받아서 어촌계나 마을기금으로 적립한다.

이렇게 마을어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어촌계나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적립되어 주민들의 복지와 기본소득으로 재분배된다. 1차적으로는 어촌계를 비롯한 마을의 유지를 위해 사용하고, 마을의 공적인 행사로서 노인잔치, 당제와 풍어제, 단합대회 등을 치르는 데 사용한 후, 남는 자금은 어촌계원 또는 마을주민에게 분배한다. 마을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연간 100만원에서 2000~3000만원까지 주민들에게 적립금을 나누어준다. 충남 외연열도의 호도나 녹도에서는 해삼양식으로 벌어들인 소득만으로도 매년 2000만원 정도를 가구별로 지급하고, 전남 흑산군도에서는 자연산 전복과 소라 등을 채취한 수익을 적립하여 3~4년마다 가구별로 수 백만원 씩 지급한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침체되었던 어촌은 마을어장의 이용방식을 새롭게 정립하여 기본소득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신안군에서 시도하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에 관한 조례’는 일명 ‘태양광 연금’으로도 불리는데, 이 또한 공유자원을 이용한 기본소득의 창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마을 단위에서 바다의 자원을 공유하여 기본소득을 창출했다면, 이제 지자체에서 공유자원인 햇빛과 바람을 에너지화하여 그 수익을 주민들의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사회의 화두로 기본소득, 이익공유, 사회적경제, 공유경제 등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섬과 해안의 어촌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과 공유경제의 가치를 먼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촌공동체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송기태 교수는 민속학을 전공하고 있다. 조선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목포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의 ‘섬 인문학’ 인문한국플러스 사업에 HK교수로 참여하고 있다. 도서해안지역에 전승되는 예능민속과 어촌민속을 조사‧연구하고 있다. 마을굿과 풍물, 무속 등을 통해 도서‧해안지역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노력해왔고, 근래에는 어촌문화사라는 관점에서 어촌의 생업발전 단계, 바다의 경작, 공유자원 등을 주목하고 있다. 또한 전통의 미래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전통문화의 생태계’와 ‘전통의 현대적 적응모델’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어촌민속 연구로 「양식어업에 따른 생태인지체계의 변화와 해산물 부르기 의례의 진화」, 「어경(漁耕)의 시대, 바다 경작의 단계와 전망」, 「서남해 무레꾼 전통의 변화와 지속」, 「농촌과 어촌의 전통적 노동공동체 비교」, 「서해안 고창지역 어살어업의 변화과정 고찰」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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