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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의 법과 시대정신] 박순애 교육부 장관 사퇴로 끝낼 일이 아니다

여성 최초로 한국행정학회장을 역임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여러 정권에 걸쳐 각종 정부 관련 위원회 위원직을 섭렵한 행정학자. 박순애 교수의 얼굴이나 말투에 자신감이 넘칠 수 있었던 이유는 충분했다. 얼마 전 방송에 출연한 박 전 장관을 대기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평소와 달리 완전히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지나가는 말처럼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라는 소회도 털어놓았다. 개인적 친분은 없었지만 위원회 등에서 보았던 그 박 교수와는 너무 딴판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는가. 잘 나가던 교수직 대신 장관직을 택했을 때는 본인의 말처럼 일종의 사명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믿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명 사실 발표와 함께 쏟아진 각종 의혹과 비난 여론에 박 전 장관 본인도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예전 어느 저명한 분이 청문회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을 대하며 “나도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라고 했다는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간의 논란이나 진영을 떠나 취임 34일 만에 장관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한 사람의 평판과 인격이 완전히 말살되어 버린 사건이다. 교수로 복직한다고 해도 더 이상 활발한 학문적 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사태는 개인적 차원의 안타까운 일로 끝낼 수 없는 사안이며, 그렇게 끝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어야 한다. 박 전 장관의 사퇴를 윤 대통령의 ‘인적 쇄신’ ‘결단’ 등으로 규정하고 시치미를 뗀다면 값비싼 교훈을 얻어야 할 사건을 값싼 신파극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논란이 된 5세 입학, 취학 연령 인하 정책 추진 과정부터 정밀 분석하고 문제점을 살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박 전 장관은 교육전문가가 아니다. 장관 혹은 국무위원이 해당 분야 전문가여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장관은 학문적 전문가가 아니라 정책적 전문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당 분야의 문외한은 곤란하지만 특정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얽힌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이를 구체화 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지식보다 중요한 자질이라는 의미이다. 어찌 되었든 박 전 장관은 넓은 의미의 교육 분야 종사일 수는 있어도 교육전문가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했을 뿐 리더십도 미지수였다. 게다가 취임 후에 한 달도 안 된 상황에서 취학 연령 인하라는 정책의 폭발성을 알았을 리 만무하다.

장관의 개인적 소신도 아니고, 시일을 다투는 화급한 사안도 아니고,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도 아니고, 인수위에서 선정한 국정과제에 포함된 것도 아니고…. 왜 불쑥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되어 2025년까지 추진한다며 기정사실화 했을까. 정치권에는 노회한 관료들이 멋 모르는 낙하산 장관을 가지고 노는(?) 얘기들이 많이 떠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사 스케줄을 만들어 녹초가 되게 하거나 장관은 내용을 잘 모르지만 논란이 되는 정책을 불쑥 발표하게 하여 곤경에 빠뜨리는 등이라고 한다. 이번 사태가 그런 유형 중 하나인지 알 수 없지만 특정 대선 후보의 공약을 반영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정책 추진 과정 등을 철저히 조사하여 향후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실의 정책 조율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진부하지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맞다. 그만큼 교육은 병역 문제와 함께 모든 국민이 이해관계자이고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부문이다. “충분히 연구해서 여론을 묻고 반영하여 준비되면 보고하겠다는 식으로 진행했다면 박수받았을 것이다” 박 전장관 사퇴와 입학 연령 인하 문제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유보통합, 초등학교 전일제 등 가정의 보육 부담을 온전히 국가가 떠맡는 방법으로 여성의 경제 참여율을 높이겠다는 등 장기적 비전 제시와 함께 추진했다면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단순한 반대 의사 표시가 아니고 극렬한 방법으로 집단적 항의를 하는 경우는 경제적 혹은 정파적 이해관계가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전 예고나 공청회 한번 없이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하고, 윤 대통령은 “해당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논란이 커진 후에야 여론 수렴을 당부하는 모습은 반발의 빌미를 준 것과 다름없다. 정책실 폐지 등 대통령실 인원을 축소하고 내각에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한다는 방침이 정책 조율기능 상실로 이어졌다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은 국민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큰 틀에서의 조율과 조정 없이 각 부처 정책이 추진되고 보고되고 결과적으로 혼선이 일어난다면 그 부담과 책임은 대통령과 정권에 돌아간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실의 조율과 조정 기능을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각 부처에 대한 대통령실의 간섭이나 불필요한 통제를 줄이는 것과 국정 전반의 조정 기능 상실은 같은 말이 아니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대통령실의 인사 기능을 점검할 필요도 있다. 박 전 장관의 사의 표명은 사퇴가 아니라 사실상 문책성 경질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가 손목을 뿌리치는 모습,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피해 도망치다(?) 신발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인 장관이 직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박 전 장관의 경우 도덕성 논란 등으로 장관 자질에 대한 의구심이 처음부터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추천 과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박 전 장관이 인수위에 참여했고, 여성 국무위원 임명이 중요한 과제였던 상황에서 추천 자체가 문제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임명 강행 과정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적 반감을 더 키운 사실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임명이 늦어져서 언론의, 또 야당의 공격을 받느라 고생 많이 했다”는 발언이다. “청문회에서 시달린 장관들이 일을 더 잘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의 부아를 돋운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한 실책이다. 궁금한 건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훌륭한 장관’이라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검증을 잘못한 것인지, 검증은 제대로 했지만 대통령실 인사팀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최종 결정권자인 윤 대통령의 고집이 작용한 것인지 분석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학제 개편 등 모든 논란 책임은 저에게 있으며 제 불찰이다”라는 박 전 장관 사임의 변은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권 전체의 책임이며 불찰이요, 궁극적으로는 정권을 책임진 윤 대통령의 책임이며 불찰이다. 같은 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지만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고 한다. 이번 사태를 윤 대통령과 정권 전체의 심기일전 계기로 삼는다면 우유가 될 것이로되, 개인적 망신으로 끝난다면 독이 될 따름이다. 윤석열 정부의 ‘취임 후 첫 낙마자’가 마지막 낙마자가 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권 담당자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이다. 관련자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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