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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연의 뜨거운 정치] “정치적인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정치적인 세상에서 지킬 수 없는 것들

“영우야, 아빠가 살아보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정치적이야. … 지 혼자 약속과 의리 타령하는 못난 남자는 결국 그 성공하지 못한 대가를 자기 딸한테 치르게 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화에서 주인공 우영우의 아빠가 딸에게 던진 회한 가득한 말이다. 약속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사법고시를 포기했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는 이 대사를 듣고 의문이 들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정치적인가? 정치적인 세상에서는 약속도, 의리도 부질없는 것인가?

이 드라마에서는 그린벨트 지역인 소덕동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건설이 추진되자 마을을 지키기 위해 이를 저지하는 소송을 벌이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미 넘치는 약자인 소덕동 주민들과 이들을 변호하는 주인공이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행정기관과 대형로펌에 맞서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나서는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다보면, 실리적인 강자보다 인간적인 약자를 응원하게 된다. 그러면서 소덕동 주민들은 ‘낭만적’인 집단으로, 이들과 대립하는 상대편은 ‘정치적’인 집단으로 일컬어진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평생을 살아온 마을이 고속도로 건설로 황폐해지는 것을 반대하는 행위는 순진하고 이상적이고 비정치적인가. 거꾸로, ‘정치적’인 행위는 인간적인 선택, 이를테면 의리와 약속, 도덕, 신뢰, 공익 등의 가치와 함께일 수 없는가. ‘정치’는 차갑고 비정한 것인가. 

차갑고 비정한 그들의 정치

물난리가 난 현장에서 망언을 내뱉는 정치인들이나, 불과 몇 달 전에는 얼싸안고 웃다가 선거가 끝나자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정치는 평범한 사람들이 가까이할 것이 못 된다고 느끼게 된다. 온갖 권모술수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처세에 능한 사람이나 비범하게 낯 두꺼운 사람, 또는 돈이 남아돌아 명예가 필요한 부자들이나 기웃거리는 것이 정치라 여겨지는 것이다. 거대 정당들의 내분도, 여야 간의 공방도 모두 저들끼리의 권력다툼에 불과하니 관심을 거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가 번져나가면 우리 사회에서 정치의 역할이 절실한 곳들은 어떻게 될까. 지난 20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된 법안이 1만5천 건이 넘었지만, 이러한 정치적 무능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은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정치는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다양한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 유지를 위한 올바른 질서를 만드는 행위이다. 인간사회의 질서는 동물들의 정글과 달리 약육강식의 법칙을 뛰어넘는 인간다움을 갖추어야 한다.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민주적 선거제도로 공직자를 선출하고, 각종 법규를 준수하며, 세금을 납부하는 등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마침내 나에게 이롭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소덕동의 천연기념물 팽나무가 고속도로 건설로 제거된다면, 우영우와 같은 장애인이 일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면, 그런 사회에서는 나 역시 행복할 수 없다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며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질서를 옹호하게 된다. 
이런 시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해 법과 제도를 만들고, 세금을 적절히 배정하고, 행정을 감시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다.

인간다운 세상을 위한 정치

정치적인 해법은 인간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충돌과 갈등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기에 강자가 항상 승리하는 정글의 법칙을 깨트릴 수 있는 무기가 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도 반지하가 아닌 안전하게 쾌적한 공간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투기를 위한 부동산 정책이 아닌 서민을 위한 주거 정책을 실행케 하는 강력한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약자를 위한 것이거나, 오랜 통념에서 벗어나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진보적인 결단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소신있게 판단하고 책임있게 실행하는 정치력을 보여주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공직자와 정치인의 책무이다. 
결국 정치는 그 무거운 책무를 어떻게 지켜내는가 하는 국민과의 약속, 진정성과 의리의 문제이다.

‘정치적’인 행위가 내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믿음직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만의 이익을 위한 계산적인 태도, 나아가 파렴치한 권모술수 따위로 이해되는 데에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부끄러운 모습이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정치권력을 안겨줄 수 있는 것도, 빼앗을 수 있는 것도 국민이라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약속과 의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더 이상 좌절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비정하고 무책임한 저들만의 정치를 따뜻하고 정의로운 민초들의 정치로 바꿔나가야 한다.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정치다운 정치가 절실한 시대. 평범한 국민들로부터 타오르는 뜨거운 정치적 힘이 필요한 때다.

- 김재연 (前 진보당 상임대표, 19대 국회의원)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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