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이자 현실주의 정치철학자로 분류되는 독일의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는 정치를 ‘적과 동지’의 구분으로 보았다. 그의 적과 동지의 구분 기준은 어떤 이상적 가치가 아니다.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미학적 구분, 정의와 불의라는 윤리적 구분과도 다르다고 했다. 현실 그 자체로서 적과 동지를 말한 듯하다.

나치 연루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는 경쟁으로 말해지는 정치현상이나 논쟁으로 말해지는 지식 사회의 그것들이 사실은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정치철학이 온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나, 투쟁의 현실로서 정치에 대해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것이 ‘적과 동지’론이다.

한국사회에는 정치의 명분을 주로 공공선에서 찾는다.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는 공존, 공생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이다. 정치적 명분뿐 아니라, 정치적 행위 자체도 공공선의 관점에서 행해지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그러길 요구하는 비현실적인 기대이다.

자유 시장경제와 맞물려 전개돼 온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론은 정치적 행위가 공공선이 아니라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위한 동기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것을 또 합리적 행위, 합리적 선택이라고 본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반드시 그 사회 전체의 합리적 목적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합리적 목적과 공공의 합리적 목적이 충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때로는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갈등과 투쟁의 정치는 계속된다.

공공선의 관점에서 기대하든,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것이든 정치 현상에는 적과 동지의 투쟁 양상이 두드러진다. 공생이 어려운 적과 동지로 구분되는 불가피한 정치 현실일 수도 있고, 공생을 위한 투쟁일 수도 있다.

이기적 투쟁과 공생이라는 언뜻 대립되는 이중적 속성이 현실 사회를 꾸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관계로 축소시켜 보자면, 적대감과 연민이 혼재된 상태라 할 수 있다. 투쟁과 적대감, 공생과 연민, 이 중 어느 요소가 더 지배적인가는 사회에 따라, 개인적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의 정치에서 여전히 투쟁의 정치, 전선의 정치가 강조된다. 반제 투쟁과 민주화 투쟁의 유산이기도 하다. 무상급식 주민 투표가 그렇고, 야권 통합도 그렇다. 참 야권 통합은 한편으로는 전선의 정치이고, 다른 한편으론 통합의 정치이다. 보수 여당과 싸우기 위한 야권의 통합이다. 물론 야권 내부에도 전선이 있다고 하는 쪽도 있고, 보수 여당과의 공생 전략은 왜 안 될까 생각해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한나라당과의 공생 전략이었을까, 투쟁 전략이었을까? 둘 다일 수 있다.

[분노하라]는 에셀(Stephane Hessel)의 외침이 우리 사회에 더 절실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 통합, 통합의 리더십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분노도 필요하고 사회통합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회통합을 가로 막는 문제들에 분노하라고 정리하면 단순 논리화의 왜곡일지도 모르겠다.

분노와 투쟁 의지 못지않게, 우리 사회의 통합 원리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이 절실하다. 사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사회 통합 원리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경시됐다. 우리의 역사적 환경이 내부의 통합 문제에 대한 고민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이나 강대국에 책임이 있었고, 독재권력 시기에는 그 독재정권에 책임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독립 이후, 민주화 이후에 남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문제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단일 민족, 시민사회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었다. 다양한 이해관계·견해를 가진 개인과 집단으로 구성돼 있다. 민족 구성원 또는 시민사회 내부에 차이도 있으며 차별도 있고, 이에 따른 갈등도 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심화의 과제는 바로 이런 문제의 민주적 사회통합에 다름 아니었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복지’ 문제는 바로 그런 통합 과제의 당면한 고리의 하나이다. 한국사회의 발전 단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과제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는 양극화와 ‘고용없는 성장’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최근 자본주의의 특징 속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보수 언론인 조선일보에서조차 이를 ‘자본주의 4.0’으로 명명하면서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있다.

이런 시대 상황은 진보 진영뿐 아니라, 정치권의 보수 진영에도 반영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시대적 상황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이들 일부의 태도 변화가 선거를 앞 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시대적인 상황 변화에 대한 인식이다. 낙수효과(trickle down)를 기대하라며 홀로 갔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제는 동반성장, 공생발전을 말하고 있다. 물론 구호에 그치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진단이 필요하다. 단지 보험, 연금 같은 2차 안전망으로서 복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양극화의 경제구조와 노동 시장 문제 등에 대한 총체적인 처방이 요구된다.

서울시 무상급식 저지 주민투표 무산 이후, 서울시장 보선과 맞물려 복지 논쟁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내년 대선 때까지 선거 정국이 계속될 것이다. 선거 정치에서는 진영간 대립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여·야 전선이든 보수·진보 전선이든, 적과 동지의 투쟁 그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생을 위한 경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나아가 바람직한 사회 통합, 공생을 표방하는 정치 자체가 양극화의 대립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건 어려운지 모르겠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2011. 8. 28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manm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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