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 시리즈 10

트로이의 찌질이 왕자 파리스와 당대 최고의 미인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의 사랑의 도피

- 《일리아스》 3 -

트로이전쟁, 그 시작은 미약하나

트로이전쟁이 역사 속의 전쟁으로 확인되었지만, 그 발단과 경과 등 전쟁의 전모는 알 수 없습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두 편을 통해 트로이전쟁을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그리스의 트로이 성 습격 사건 정도의 일회성 전투일 수 있는 트로이전쟁을 그리스인 호메로스의 상상대로 당대 모든 신과 영웅 그리고 지혜로운 인간들이 총출동한 최초의 동서 세계대전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상의 크고 작은 다툼은 항상 사소한 데서 시작합니다. 세계 최초의 동서대전도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납치한 데에서 시작합니다. 문제는 헬레네의 지아비가 메넬라오스인데, 하필 그는 그리스의 맹주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동생이었던 겁니다. 시아주버니 아가멤논은 분노합니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잘 걸렸다’였습니다. 그는 이 사소한(?) 사건으로 그리스 전체에 총동원령을 내려 연합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서 헬레네의 납치가 ‘사랑의 도피’라는 후세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물론 당시 트로이의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또 오랫동안 이웃 나라에 가서 여인을 납치해와 아내로 삼는 소위 납치혼, 보쌈은 횡행했고, 상호 보복으로 이어질 뿐, 이처럼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리스의 헬레네 납치도 그 이전 그리스인들의 소아시아 여인들의 납치에 대한 보복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의 대표 미인 헬레네를 납치한 혹은 사랑의 도피를 벌인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그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불장난으로 시작된 트로이전쟁 내내 조국 트로이를 위해 아니면 자신의 연인 헬레네를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도 부족할 판에 싸움은 뒷전이고, 자신의 투구를 장식하고 광내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철딱서니가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당시 관례대로 전쟁 발발의 당사자인 두 사람이 먼저 전선 앞에 나섰습니다.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를 걸고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가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파리스는 몸을 부대끼며 칼싸움을 하길 두려워해 멀찌감치 떨어져 화살이나 핑핑 날리며 후방을 기웃거리던 자였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의 대결은 일방적인 싸움으로 계속되다 파리스가 안 되겠다 싶었던지 목숨을 건 승부의 규칙을 어기고 명예로운 죽음을 피해 트로이 진영으로 도망을 칩니다. 이를 지켜보던 연인 헬레네조차 성 위에서 돌아가 싸우라고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와 형 헥토르도 이건 아니라고 도망치는 파리스의 이름을 나무라듯 외칩니다. 그러나 파리스는 도망 와서 형 헥토르의 다리를 붙들고 살려달라며 눈물을 흘리며 애원합니다. 끝내 바닥을 다 드러냅니다. 또 그렇게 도망쳐 목숨을 건지고도 그날 밤 헬레네의 처소에 들어가 잠자리까지 요구합니다. 정말 최악입니다.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 자크 루이 다비드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 자크 루이 다비드

그런데 헬레네는 거의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의 왕과 귀족들이 다투어 구혼자로 나서는 바람에 정혼자를 낙점하기 전에 페어플레이하기로 각서까지 받아낼 정도로 당대 뭇 남성들이 인정하는 그리스 최고 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된 메넬라오스는 명가 스파르타의 왕이었고, 그리스 맹주 미케네 왕 아가멤논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렇게 화려하거나 매력적이지는 않았으나 용맹한 사나이, 상남자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당시 그리스 최고의 셀럽 커플이었습니다.

그러다 헬레네는 스파르타로 도망 온 대책 없고 나약한 남자 파리스와 하룻밤 사고치고, 그 남자가 찌질이인 것을 뒤늦게 깨닫고도 그리스로 돌아가지 않고 소아시아의 험한 벌판을 운명처럼 함께 떠돕니다. 주변에 보면 이런 찌질이와 미녀 커플의 미스터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항상 궁금합니다. 미녀는 왜 찌질이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 모성애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선택을 부정하지 않으려는 자존심 때문일까?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당장에 트로이의 목을 분질러버릴 기세였으나 9년 넘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리한 공방이 계속됩니다. 여기에는 참 복잡한 사연이 엮이고 꼬입니다. 먼저 전쟁이 벌어진 기원전 1250년경, 호메로스의 트로이전쟁은 영웅들만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의 변곡점마다 신들이 개입했습니다. 공정한 심판도 아니고, 선악을 나누어 어느 한 편을 들어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신들은 인간보다 더 변덕스럽다고 했던가요? 거기에 신과 인간의 혈연관계와 애증 관계까지 얽히고 섞여 수시로 신들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도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반전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니 《일리아스》가 시작하는 종전 50일 전까지도 엎치락뒤치락이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한 시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서문에 시의 여신에게 분노를 노래해달라고 외치며 대서사시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일리아스》는 분노(憤怒)를 노래한 시입니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왜 일어났는지, 그의 분노가 어디로 발전하는지, 그의 분노가 어떻게 끝나는지, 기승결 구조입니다. 그러나 호메로스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어떻게 일어나 어떻게 사그라지는지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분노가 어떻게 승화하는지를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기승전결 구조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그사이에도 전쟁은 여전히 신의 개입과 변덕에 따라 출렁이었습니다. 여기서는 트로이전쟁을 역사로 보고, 《일리아스》를 그 역사의 기록으로만 해석하여 신들의 출현과 개입을 배제했습니다. 자, 그러면 《일리아스》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 (가디언, 2022)
 

최봉수 칼럼니스트
최봉수 칼럼니스트

최봉수

김영사 편집장
중앙 M&B 전략기획실장
웅진씽크빅 대표이사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프린스턴 리뷰 아시아 총괄대표

주요 저서 <출판기획의 테크닉>(1997), <인사이트>(2013),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2022)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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