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단체, 정부안 비판 "의대 증원 졸속 정책" "의사 교육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
의대교수들 "예정대로 25일 사직서 제출" "정부,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
野 "지역의료 대책 없는 총선용 포퓰리즘".. 與 "전공의들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
의협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 전재" "필요하다면 정치권과 연대"
국민여론 54.4% "2000명 증원 유지해야".. "정부 대응 잘못하고 있다" 49%

정부가 20일 내년도 의대 정원 대학별 배정 발표를 강행하면서 의정 갈등이 파국을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20일 내년도 의대 정원 대학별 배정 발표를 강행하면서 의정 갈등이 파국을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정부가 20일 내년도 의대 정원 대학별 배정 발표를 강행하면서 의정 갈등이 파국을 향하고 있다. 여기에 25일부터 의대 교수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이 현실화되면 의정 대립이 극에 달할 전망이다.

의협은 한발 더 나아가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혀 가뜩이나 어려워진 여당 입장에서 악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 여론은 여전히 의대 정원 확대 찬성 비중이 높지만,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긍정 보다 부정평가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의사단체, 정부안 비판 "의대 증원 졸속 정책" "의사 교육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

이날 정부 발표가 나온 직후 의사 단체는 일제히 강하게 반발했다.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의학 교육의 질을 우려하며 해결책을 반드시 찾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전의교협은 오는 25일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와는 별개의 의대 교수 단체다. 전의교협은 최근 서울행정법원에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의대 증원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조윤정 비상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시설을 빼고 당장 건물만 짓는다 해도 몇 년이 걸린다. 전국 의대의 시설과 교원 교수를 모두 생각하면 수백조 원은 필요할 것"이라며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지팡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어디서 만들어 오느냐"고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연세대학교 의대와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교수들도 성명을 내고 의대 증원 배정안을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의대 증원 졸속 정책은 우리나라 의사 교육을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시켜 흑역사의 서막을 열 것"이라며 "사직서를 내고 휴학계를 제출한 (전공의·의대생 등) 후속 세대 1만5천명을 포기하며 진행하는 의대 증원은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국대의대 교수협의회도 성명을 통해 "전공의와 학생들에 대한 불이익이 현실이 되는 순간 일정한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며 "수십 년간 수십조 원의 국가재정을 투입하고도 현재의 인구감소를 해결하지 못한 보건복지부에서 폭력적인 의대 정원을 전문가 집단과 상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한 것을 개탄한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도 입장문에서 "정부에 다시 간곡히 호소한다"며 "더 이상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붕괴 정책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조속히 의료가 정상화될 수 있게 지금이라도 현명한 결단을 내려달라"고 밝혔다.

서울시의사회 역시 성명을 통해 "정상적인 정부가 아니라 마치 대검찰청 특수부를 상대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지방에 의대정원을 집중 확대하면 지역민이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는 얄팍한 속셈이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정부는 비현실적인 정책을 군사정권처럼 밀어붙이지만 대한민국의료는 되돌릴 수 없다"며 "최악의 상황은 이미 시작됐다"며 반발했다.

의대생들도 반발하고 있다.

의대·의전원 학생 대표들로 구성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이날 공동 성명서를 내고 "증원이 이뤄진다면 학생들은 부족한 카데바(해부용 시신)로 해부 실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실습을 돌면서 강제 진급으로 의사가 될 것"이라며 "이번 정책은 협박과 겁박으로 의료계를 억압하고, 이로 인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수작"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의 일방적 발표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학생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휴학계를 수리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의대 교수들 "예정대로 25일 사직서 제출" "정부,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

의대교수들은 예정대로 25일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며 정부를 압박했다.

방재승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이같이 밝히면서 "(의대증원 발표로) 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며 "교수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 병원 지키고 있지만 점점 지쳐가고 있다. 대학병원들이 줄도산하고 대한민국 의료가 너무 큰 상처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대 교육에는 여러 가지 실습 기자재와 첨단 장비와 고도의 숙련된 교수진 필요하다"며 오전, 오후, 야간반 의대를 하자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말도 안되는 증원 숫자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의사단체와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방 위원장은 "정부가 너무나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다"며 "어떻게든 협상 테이블에 다시 정부와 의협, 전공의들이 앉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볼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내주 단체사직을 예고한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21일 입장을 내고 '중재자'로서 정부와의 대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전날 대학별 증원 인원까지 확정함으로써 의·정 간 협상은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향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게 비대위의 입장이다.

비대위는 "여전히 전공의들과 학생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고 본다"며 "정부에 제시한 중재안이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모든 의료개혁 의제에 대해 의료계와 논의가 가능하다면서도 '2천 증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거듭 못박았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지난 1년여 간 의료계와 사회 각계각층과 130여 차례가 넘는 논의를 통해서, 과학적 근거로 2천 명이란 숫자를 결정했다"며 "오래된 논의에도 의료계는 여전히 반대를 하고 있고, 또 실력행사를 했다. 더 이상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의료개혁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의사 진료 거부 중단 촉구 서명운동 [사진=연합뉴스]
보건의료노조, 의사 진료 거부 중단 촉구 서명운동 [사진=연합뉴스]

野 "지역의료 대책 없는 총선용 포퓰리즘".. 與 "전공의들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

의협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 전재" "필요하다면 정치권과 연대"

정부의 발표에 대해 야당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는 지역 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거듭 지적했다.

김민정 녹색정의당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지역 의료 강화를 강조했지만 양성된 의사의 지역 배치 방안이 없는, 오직 증원 뿐인 허술한 대책"이라며 "총선용 포퓰리즘이란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부겸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지난 18일 "의대 증원의 본질은 국민을 위한 공공 필수, 지역 의료를 정상화하는 데 있다"며 "이 목적에 비춰볼 때 의대 정원 숫자 2000명만을 고집하면서 의사 집단 전체를 범죄인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보건의료연합) 역시 논평을 내고 정부의 안은 지역을 고려한 결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번에 증원 대상인 의대들 중에는)아예 서울에만 있거나 수도권에 미인가 교육시설 등을 운영하면서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교육·실습을 한다"며 "명분은 지역의료이고 사실상 수도권 대형병원들의 민원을 해결하려는 정책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환자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호소했다.

정광재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 대변인은 20일 논평을 내고 "의료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의 명령"이라며 "오늘날 의료 난맥의 상당 부분은 의사 수 부족에서 비롯됐으며, 이에 따른 불편함은 모두가 체감하는 현실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이 한 달이 넘었다"며 "제때 치료나 수술을 받지 못해 생명을 잃은 환자들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더욱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정 대변인은 "부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환자 곁으로 돌아와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정부와 함께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정부의 결정에 반발해 정권 퇴진 운동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여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주수협 언론홍보위원장은 20일 2차 소환 조사를 위해 경찰에 출석하는 자리에서 취재진에게 "오늘부터 14만 의사의 의지를 모아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택우 비대위원장 등이 집회에서 회원들을 격려했다는 메시지를 근거로 의사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면허 정지처분을 내렸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기본은 언론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우리 의사들의 의지를 모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앞장서려고 한다"며 "필요하다면 정치권과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협과 같은 의사단체는 그동안 여권인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했으나 총선을 3주 앞둔 시기에 정권 퇴진 운동을 선언한 만큼 여당에게는 대형 악재라는 분석이다.

국민여론 54.4% "2000명 증원 유지해야".. "정부 대응 잘못하고 있다" 49%

한편, 국민 절반 이상은 여전히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핌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18일~19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조사한 결과, '기존 원안인 2000명 증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54.4%로 나타났다. '의대 정원 확대를 중단해야 한다' 30.2%였다.

다만,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리는 모습이었다.

여론조사 회사 한국갤럽이 지난 12~14일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해 '정부안대로 2000명 정원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은 47%로 조사됐다. '증원 규모와 시기를 조정한 중재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응답은 41%였다.

의사계의 반발과 의료 공백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49%,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3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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