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사의 후 공수처 수사 받을 것".. 尹, 한동훈 요청 전격 수용
美 외교전문지 "이종섭 논란, 총선 앞둔 여당에 골칫거리"
야권 "해임 시켰어야" "윤 대통령 대국민 사과하라" "공수처 엄정 수사해야"
與 "소환 지연, 공수처와 민주당이 총선 앞두고 정치질" 공수처 "당분간 소환 어려워"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임명 25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진=연합뉴스]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임명 25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총선을 12일 앞둔 가운데 이종섭 주호주대사(전 국방부장관)가 29일 임명 25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 대사가 임명된 후 정권심판론이 거세게 일며 총선에 악영향을 주자 주호주대사 부임 11일 만에 조기 귀국 조치했으나 여론이 더 악화되는 양상을 보임에 따라 사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이 대사의 사퇴로 끝날 일이 아니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사과와 공수처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반면, 이 대사와 여당은 공수처를 향해 조속히 소환 조사를 하라며 요구하고 나섰다.

이종섭 "사의 후 공수처 수사 받을 것".. 尹, 한동훈 요청 전격 수용

외교부는 29일 출입기자단 공지를 통해 "이종섭 대사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사를 대리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앞서 이날 기자들에게 공지를 보내 "그동안 공수처에 빨리 조사해 달라고 계속 요구해왔으나 공수처는 아직도 수사기일을 잡지 않고 있다"며 "저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끝나도 서울에 남아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는 이 대사의 입장을 전했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 대상이던 이 대사는 지난 4일 주호주대사로 임명됐다. 이에 따라 출국금지 상태이던 이 대사는 호주로 출국했고, 야권을 중심으로 핵심 피의자를 해외로 도피시키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이 대사가 장관 재임 시절 대통령실로 추정되는 전화를 받은 후 해병대 수사단의 보고서가 경찰로 이첩되는 것을 막았다는 정황이 나오며 의혹은 더욱 커졌고, 정권심판론이 다시 불붙는 계기가 됐다.

이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하여 여권 주요 인사들이 이 대사의 조기귀국을 종용하고 자진 사퇴 목소리까지 나오면서 4·10 총선의 최대 악재로 떠올랐다.

결국 이 대사는 출국 11일 만인 지난 21일 오전 일시 귀국했다. 이 대사와 정부는 형식상으론 오는 25일부터 열리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 참석을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두 차례 회의가 모두 화상으로 진행됐고, 대면회의가 급조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종섭 구하기' 논란은 더 커졌다.

그리고 일주일여 만에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여권 내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매체는 한동훈 위원장이 직접 대통령실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국민적 의혹이 증폭된 상황에서 이 대사가 공직에서 물러난 채로 조사에 응하는 것이 국민 눈높이에 맞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국정운영은 국민의 신뢰를 먹고 사는데 (이 대사) 본인으로 인해서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국정 신뢰에 악영향을 주는 상황이 됐다"며 "총선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판단해 부담을 느껴서 사퇴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또 다른 여권 고위관계자는 "(이 대사 사퇴에 대한) 당의 요청도 있었고 이를 대통령이 대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美 외교전문지 "이종섭 논란, 총선 앞둔 여당에 골칫거리"

하지만, 이 대사의 퇴진으로 국민적 분노를 잠재우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The Diplomat)는 27일(현지 시간) 이 대사의 논란을 보도하면서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국민의힘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매체는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이달 초 국민의힘 지지율이 하락했다고 짚었다.

또한 호주에 있는 한인 사회가 이 대사 부임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캐머런 머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상원의원이 지난 23일 시위에 참가해 "이 대사 파견은 호주뿐 아니라 호주 한인들에게도 무례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 대사를 귀국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대사가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합동회의' 참석차 곧 귀국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문제 삼았다.

이어 "이 대사의 귀국을 정부 부처가 아닌 여당이 먼저 발표한 것은 이상하다"라며 "방산과 관련한 긴급한 의제도 없었고, 만약 있더라도 보통은 화상 회의를 열었다"라고 지적했다.

매체는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이 대사에 대한 수사를 총선 직전 또는 이후로 일부러 미루면서 정부를 괴롭힌다고 의심한다"라며 "국민의힘은 이 대사 임명 논란이 공수처의 '정치적 수사' 때문이고, 정부는 '인권침해'라고 주장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라며 "3월 25일 열릴 예정이었던 공관장 회의가 연기되면서 이 대사의 귀국을 위해 허술하게 소집됐다는 인식이 퍼졌다"라고 지적했다.

매체는 "이 대사 관련 논란은 공감과 성찰이 결여된 총체적 국정 운영을 반영한다"라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대사로 임명했다가 불러들이는 것은 한국과 호주 간의 외교적 신뢰를 어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위원장의 요청을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했다고 전해진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위원장의 요청을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했다고 전해진다 [사진=연합뉴스]

야권 "해임 시켰어야" "윤 대통령 대국민 사과하라" "공수처 엄정 수사해야"

야권은 이 대사가 사의를 표명한 데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임명과 출국 과정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고 일제히 촉구했다.

강민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 대사의 사퇴는 정의와 상식을 요구하는 민심에 항복한 것이다. 진작 물러났어야 한다"며 "사의 표명을 통한 사퇴 수순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 해임시켜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출국금지 된 피의자를 윤 대통령이 주 호주대사에 임명해 해외도피 의혹을 자초했기 때문"이라며 "호주교민은 물론 호주 주 상원의원이 대사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사가 물러난 것만으론 미봉에 지나지 않는다"며 "윤 대통령은 도주대사 파문과 외교 결례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사의 사퇴에 대해서도 "매우 유감스럽다"며 "이종섭 대사가 진정 책임을 지는 길은 채 상병 사망사건 축소 외압 의혹의 몸통에 대해 진실을 밝히는 것뿐"이라고 일침했다.

그러면서 "이 대사의 사퇴를 계기로 더욱 엄정한 공수처 수사를 기대한다"고 했다.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윤 대통령은 '안타깝다. 국민 뜻에 따라 사의를 수용하겠다'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갈 생각은 말라"며 "왜 이종섭 전 장관을 임명하고, 국민도 모르게 호주로 보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께 진심을 다해 사과해야 한다. 방지책도 제시하라"고 밝혔다.

이어 강 대변인은 이 대사를 향해 "공수처 조사를 재촉하고 있는데, 자중자애하라"며 "조사기관에서 준비가 되면 어련히 부르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정인성 개혁신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떨어지면 마치 혈중알코올농도 떨어지듯 제정신이 드나보다"라며 "너무 늦었고 너무 무례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제 시작이다. 이종섭은 채상병 수사외압 사건의 핵심 피의자이나 그래봐야 종범"이라며 "주범은 용산에 있다"고 지적했다.

정 대변인은 "개혁신당은 이 '조그마한 사건'의 주인공 채 상병과 박정훈 대령의 억울함이 해소될 수 있도록 용산에 숨은 주범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도 덧붙였다. 앞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채 상병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지칭한 바 있다.

이동영 새로운미래 선임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대사가 '서울에 남아 절차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대단히 뻔뻔하다.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피의자 이종섭'의 사표를 받을 게 아니라, 진즉에 호주대사에서 경질하고 공수처에 보냈어야 했다"며 "지금 '피의자 이종섭'의 사표를 당장 수리하고 공수처의 엄정한 수사를 지시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핵심 피의자를 호주대사에 임명하고 국가권력을 동원해 호주로 도피시켰던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대통령 본인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런종섭' 이종섭 대사가 결국 사의를 표했다. 만시지탄"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사직 사임은 사필귀정으로 가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공수처는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與 "소환 지연, 공수처와 민주당이 총선 앞두고 정치질" 공수처 "당분간 소환 어려워"

이제 관심은 공수처를 향하고 있다. 현재 이 대사 측은 공수처를 향해 자신을 가능한 빨리 소환해 조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대사는 조기 귀국 당시 "체류하는 동안 공수처와 일정이 조율이 잘 돼서 조사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소환을 촉구하는 입장을 냈다. 같은 날 오후에는 이 같은 입장을 담은 변호인 의견서를 공수처에 제출했다.

이 대사 측은 당시 국방부 장관으로서 법령이 부여한 직무상 권한에 따라 정당하게 업무를 처리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위법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 대사를 대리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27일 공수처에 조사를 촉구하고 혐의를 반박하는 취지의 11쪽 분량 의견서를 낸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김 변호사는 "가급적 신속하게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이미 사실관계가 모두 드러나 있는데 도대체 향후 수사로 더 밝혀야 할 고발 관련 의혹이 무엇이냐"고 말했다.

그는 "국방부 장관이 '사단장을 (채상병 사건 과실치사 혐의자 명단에서) 빼라'고 외압을 행사한 것처럼 보도됐는데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며 "(수사 권한이 없는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는) 수사가 아니어서 수사 외압이란 논리가 성립될 수 없고 고발 자체가 정치 공세"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본인도 알지 못했던 출국금지 사실을 특정 언론이 어떻게 알았는지 보도했다"며 "졸지에 '파렴치한 해외도피자'라는 지탄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감내하기 힘든 치욕"이라고 강조했다.

여당도 공수처에 조속한 소환을 압박하고 있다.

한동훈 위원장은 지난 21일 "(공수처가 이 대사를 조사할) 준비가 안 됐다면, 이건 공수처와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질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시끄럽게 언론플레이하고, 직접 입장문을 내는 수사기관을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 위원장은 22일에도 "이 대사는 사실 소환받은 것도 없다"며 "범죄 혐의가 드러난 것도 없고 재판받은 것도 없고 기소된 것도 아직 없다"면서 조기 귀국해 조사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표한 만큼 공수처가 신속히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디지털 증거 자료 분석 작업이 진행 중이고 참고인 등에 대한 조사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당분간 이 대사를 소환 조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수처는 22일 출입기자단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며 "수사팀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 수사에 전력을 기울인 뒤 수사 진행 정도 등에 대한 검토 및 평가, 변호인과의 협의 절차를 거쳐 소환조사 일시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6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셀프 출석'을 시도하자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수사는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마음이 다급하시더라도 절차에 따라 수사에 잘 응하면 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 급히 자진 귀국한 송 전 대표가 검찰에서 제대로 된 첫 조사를 받은 것은 귀국 후 228일이 지난 지난해 12월 8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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