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돌맹이의 외침’ 유동우 소장 안내, 文대통령 민갑룡 청장에게 “공개사과 감사”
지선 스님 조사실에서의 경험 얘기에 文 “철저한 고립감 속에서 무너뜨려버리는 것”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을 마친 후 509호 조사실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을 마친 후 509호 조사실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정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한 옛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을 찾아 민갑룡 경찰청장이 전날 이한열 열사 사망에 경찰수장으로서 공식사과한 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민주인권기념관(서울시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후 ‘어느 돌맹이의 외침’의 저자로 1981년 전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됐던 노동운동가 출신의 유동우 민주인권기념관 관리소장의 안내로 인권기념관을 둘러봤다.

문 대통령은 박종철 열사가 숨진 509호 조사실에 도착해 열사가 물고문 당했던 욕조를 지그시 내려다 보고 김정숙 여사와 함께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 후 묵념했다. 대공분실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던 지선 스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문 대통령 내외에게 자신이 조사실에서 겪었던 경험과 당시 심정 등에 대해 문 대통령에게 얘기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이 자체가 그냥 처음부터 공포감이 딱 오는 거죠. 물고문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라고 했고 지선 스님은 당시 폭행당한 얘기를 했다. 문 대통령은 지선 스님 말에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여러 가지가 무너뜨려버리는 거죠”라고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또 “그래도 또 경찰에서 이곳을 민주인권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내놓은 것도 큰 용기”라고 했고 지선 스님도 “그렇습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509호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종부(박종철 열사의 형)과 민갑룡 경찰청장과 인사를 나눴다.

문 대통령 이 자리에서 민 경찰청장에게 “이 장소를 민주인권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해 주시고, 또 어제는 공개적으로 사과 말씀도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민 청장이 전날 배은심 여사를 찾아 공식 사과한데 대해 치하했다. 이에 민 청장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새로 경찰이 된 모든 사람들이 반성하고 성찰하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앞서 유동우 소장은 이 건물의 유래에 대해 “1976년도에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지어졌다. 처음에 5층으로 지어졌다가 1983년 전두환 정권 때 7층으로 증축됐다”며 “현대건축 아버지로까지 추앙받는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것인데, 여기에 끌려온, 연행되어 온 사람들이 완벽한 고립감과 공포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이런 방향으로 설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철문을 보면 2개로 되어 있다. 방호문까지 되어 있는데, 눈을 가린 상태로 거기를 통과하면 그 방호문이 열리는 소리는 탱크가 굴러가는 굉음을,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들린다. 또 여기는 연행되어 온 사람들이 통과하는 5층 조사실로 올라가게 되는데, 통과하는 통로가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입구 철문을 가리키며)이게 바로 연행되어 오는 사람들의 전용 출입구다. 특징이 연행되어 오는 사람들이 통과하는 모든 문은 5층 조사실 안에 들어갈 때까지 모든 게 철문으로 되어 있어서 마찰음과 그 굉음이 눈을 가린 상태에서 들으면 아주 공포스럽다”고 했다.

유동우 소장은 5층 조사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대해 “5층 조사실은 보시는 대로 철제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이 나선형 계단은 72계단으로 되어 있고 세 바퀴를 돌게 돼 있는데 눈을 가린 상태로 끌려 올라가게 된다”며 “앞에서 수사관 한 사람이 옷깃이나 옷이 없는 경우에 머리끄댕이 잡고 올라간다”고 얘기했다.

이어 “떨어지지 않게 뒤에 허리춤 있는 데를 뒤에서 받치면서 그렇게 들어가게 된다”면서 “올라가는데 여기 이 나선형 계단은 2층, 3층, 4층으로는 나가는 통로가 없다. 여기 발 디디는 순간 5층까지 끌려 올라가서 바로 조사실로 올라가게 된다”고 당시 연행된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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